그런데 이 기본이 지켜지지 않는 선거가 있다. 바로 시군구의원을 뽑는 기초의원 선거다. 선거가 40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전국 선거구별로 몇 명의 기초의원이 뽑히는지 아직도 정해지지 않았다.
기초의원 선거구별 당선자 수 ‘미정’
내막은 이렇다. 여야는 17일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규모를 10%에서 14%로 늘리고, 인구 변화에 따라 선거구를 조정한 내용을 담았다. 지방선거의 규칙을 뒤늦게 정한 셈이다. 이미 숱한 예비후보들이 뛰고 있는 시점에 규칙을 정한 것도 한심한 일이지만, 개정안 처리에도 불구하고 기초의원 당선자 수는 여전히 알 수 없다.개정안에는 기초의원 정수를 3003명으로 정해 놨지만, 전국 27곳을 중대선거구제 시범실시 지역으로 정하고 해당 선거구의 기초의원 당선자 숫자는 각 지역에서 정하도록 했다. 한 선거구에서 1명을 뽑는 소선거구제와 달리 중대선거구는 한 개의 선거구에서 최대 5명까지 뽑을 수 있다. 27곳의 시범실시 지역마다 몇 명의 기초의원을 뽑을지 정해야 비로소 6월 지방선거에서 뽑히는 정확한 선거구별 기초의원 당선자 수가 확정된다.
이처럼 선거가 채 두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정확한 당선자 수를 모를 정도로 기초의원이 가벼운 존재일까. 기초의원은 기초자치단체인 각 시군구 행정의 기본이 되는 조례를 정하고, 살림살이인 예산안을 심사한다. 전국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기초자치단체인 울릉군(약 8700명)의 한 해 예산만 약 2400억 원에 달한다. 여기에 충북 청주시(약 3조8000억 원)처럼 한 해 예산이 수조 원에 달하는 기초자치단체들도 적지 않다.
또 지방자치 발전을 위해 기초의원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지만 여야는 이번 선거법 개정 과정에서 논의하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기초의원까지 정당에서 공천하다 보니 후보자들이 현역 국회의원의 눈치를 보거나 줄 서기에 급급하다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지만 귀를 닫은 것. 오히려 여야가 처리한 선거법 개정안에는 중대선거구제 시범실시 지역과 관련해 ‘증원이 이뤄질 선거구는 지역의 국회의원이 정한다’고 명시했다. 이를 두고 한 여권 인사는 “같은 선출직인 국회의원에게 증원 대상인 기초의원 선거구를 정하도록 하는 건 아무리 시범실시라고 해도 적절하지 않다”며 “결국 출마자들이 현역 국회의원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줄 서기 논란’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이 ‘줄 서기 논란’이 심해지면 공천헌금까지 연결된다. 김경 전 서울시의원 사례에서 드러난 것처럼 현역 국회의원에게 광역의원, 기초의원 후보자들이 공천을 대가로 돈을 건네는 관행은 여전하다. ‘광역의원은 5000만∼1억 원, 기초의원은 1000만∼5000만 원’이라는 시세가 공공연하게 회자되는 상황에서 기초의원 선거구를 지역 국회의원이 정하게 한 것이 과연 적절한 조치인가.
‘풀뿌리 민주주의’ 의지 있나
여야 구분 없이 국회의원들이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말이 바로 ‘민주주의’다. 지방선거를 앞두면 앞에 세 글자가 더 붙는다. ‘풀뿌리 민주주의’다. 하지만 시민의 생활과 가장 가까운 선출직인 기초의원 선거를 대하는 여야의 모습을 보면 과연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존중과 실현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한상준 사회부장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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