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우경임]청년 탈모인 ‘의문의 1패’

8 hours ago 4

우경임 논설위원

우경임 논설위원
정부가 4일로 예정됐던 국민 참여형 토론회를 닷새 앞두고 전격 취소하면서 청년 탈모 건강보험 적용이 한바탕 소동으로 끝났다. 다양한 의견이 제시돼 시간을 두고 검토하겠다지만, 건보 적용 우선순위를 두고 제기된 윤리적 질문에 대답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원형 탈모 등 질병성 탈모는 지금도 건보가 적용된다. 유전, 노화에 따른 M자형 탈모까지 추가로 건보가 적용되면 건보 재정이 연간 1800억 원 투입될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와 환자 수가 동일하다고 가정한 규모가 그렇다. 만약 1800억 원을 연간 1억 원이 드는 신약에 쓴다면 희귀·난치성 질환자 1800명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정책 입안자로선 소수를 위한, 효과가 불확실한 치료보다 다수를 위한, 효과가 확실한 치료를 선택하고 싶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보통 사람의 윤리적 감각은 그 판단을 불편하게 여긴다.

청년 소외시키는 청년 정책

20, 30대 탈모 환자는 전체 탈모 환자 3명 중 1명꼴이다. 국가가 청년 탈모를 치료해야 할 질병으로 명명한 순간, 탈모는 그저 다른 생김새의 문제가 아니게 됐다. 물론 탈모로 고민하다 “죽고 싶다”며 병원 진료실을 찾는 청년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보건복지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탈모가) 옛날에는 미용 문제라고 봤는데, 요즘은 생존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한 것도 이런 맥락이었을 터다.

하지만 탈모약은 오리지널이 한 달에 5만∼6만 원, 복제약은 1만∼2만 원 정도다. 취업 준비 중이거나 저임금에 시달리는 청년들은 부담스러울 수 있으나 빚내고 집을 팔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운 희귀·난치성 질환자에 비할 수는 없다. ‘누구를 구해야 하냐’란 논쟁이 벌어지면서 청년 탈모인들은 적자가 임박한 건보 재정을 축내는 철부지라는 낙인을 떠안았다. 아무 잘못이 없는 청년 탈모인들은 그야말로 ‘의문의 1패’를 당한 셈이다.

공교롭게도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지방선거 직후 기자간담회를 열어 탈모 치료 급여화를 공식화했다. 대통령이 탈모 건보 적용 검토를 지시한 업무보고 당시만 해도 신중했던 정 장관이었다. 취업과 결혼, 정신 건강 등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20∼34세 청년의 M자형 탈모부터 적용하겠다고 했다. 이 때문에 2030 청년 표심 이반이 뚜렷했던 지선 이후 탈모 건보 적용에 속도를 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은 2022년 대선 당시 짧은 유튜브 영상을 통해 처음으로 청년 탈모 건보 적용을 언급했다. 그러자 당시 상대 후보였던 윤석열 전 대통령이 SNS에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를 올렸다. 2025년 대선에선 김문수 후보가 군 가산점 부활을 약속했다. 모두 20대 남성을 공략하는 공약이었으나 지켜지지 않거나, 혹은 지킬 수 없었다. 급조된 청년 정책은 청년의 울분을 가볍게 소비시켰고 되레 청년을 여론으로부터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탈모는 질병, 탈모인은 환자인가

청년 탈모 건보 적용 논란으로 우리 사회의 유별난 외모지상주의와 탈모에 대한 편견에 시달리던 청년 탈모인들은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되고 말았다. 우리는 각각 눈이 짝짝이여서, 살이 쪄서 등 크건 작건 외모에 대한 불만을 갖고 살아간다. 그렇다고 남들과 다른 외모가 곧 치료받아야 할 질병인가. 괜한 논란으로 탈모에 대한 차별적인 시각이 강화된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청년 정책이 즉흥적으로 다뤄지고 버려질 만큼 청년의 삶은 여유롭지 않다. 일자리, 주거, 자산까지 발표되는 통계마다 역대 최악의 숫자를 보여준다. 최근 청년처 신설, 초과 세수 활용 등 청년 정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부디 진정성 있는 정책이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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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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