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가 비대면 대출 관련 소송의 1심 판결문 최근 3년 치를 분석해 보니, 명의를 도용당한 피해자가 제기한 소송 30건 중 피해자가 승소한 경우는 6건에 불과했다. 지인이 피해자의 신분증 사진을 도용해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개설한 뒤 비대면 대출을 받은 사건도, 휴대전화 해킹으로 빼낸 운전면허증으로 거액을 빌린 사건에서도 법원은 은행 편을 들었다. 해킹범이 신분증을 출력해 재촬영한 것을 걸러내지 못할 정도로 은행이 허술했다는 사실이 입증된 소수의 사례에서만 피해자가 간신히 구제받았을 뿐이다.
법원이 이처럼 기계적인 판결을 내리는 근거는 2020년 금융위원회가 마련한 ‘비대면 실명확인 지침’이다. 신분증 사본 제출, 기존 계좌 활용 등 다섯 가지 확인 방법 중 두 가지 이상을 거치면 은행이 본인 확인 의무를 다한 것으로 간주해 면책해 준다. 하지만 지침이 나온 지 벌써 6년이 지났고, 그사이 금융 범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교묘해졌다. 범인이 피해자의 신분증 사진과 계좌 비밀번호를 이미 확보했거나, 휴대전화에 악성 코드를 심어 원격 조종하는 경우 기존의 본인 인증 절차는 무용지물이 된다.
날로 진화하는 금융 사기를 막으려면 낡은 본인 확인 지침부터 현실에 맞게 대폭 손질해야 한다. 비대면 금융 거래의 편의성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은행 역시 보안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명의 도용 대출로 인한 피해 책임을 적극적으로 분담할 필요가 있다. 비대면 대출 보증보험을 도입하는 등 실효성 있는 안전장치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금융 범죄의 책임을 개인의 부주의 탓으로 돌려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하는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좋아요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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