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행이었다고 둘러댈 수도 없는 2018년 논문이다. 그해 2월 한국색채학회지에 ‘조명의 면적 및 조도 연출 변화에 따른 피로감 평가 연구’라는 이 후보자의 논문이 실렸다. 한 달 뒤 ‘피로감’만 ‘불쾌글레어’로 살짝 바꿔치기한 논문이 한국조명·전기설비학회지에 실렸다. 두 논문은 실험 설계와 그 결과가 유사한 사실상 동일한 연구다. 아예 조사까지 똑같은 문장도 있었다. 연구 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상 부당한 중복 게재에 해당한다.
‘복붙’한 논문을 다시 자기 표절
두 논문의 자기 표절도 심각하지만 이조차 애당초 이 후보자가 쓰지 않은 논문이라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2018년 4월 이 후보자가 지도 교수로 이름을 올린 충남대 박사학위 논문이 제출됐고 이를 요약해 자신을 제1 저자로 학술지에 게재했다는 것이다. 물어보니 “이런 논문에 교수가 제1 저자로 들어가는 건 처음 봤다”는 교수들이 많았다.이 후보자의 제자들은 “해당 논문은 프로젝트 연구로 연구 기획부터 진행, 결과 검토, 세부 수정·보완까지 교수님이 직접 수행했다”며 “주 저자인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충남대 산학협력단이 2017년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4억2500만 원을 지원받아 국가 과제를 수행했고 연구 참여자들이 이를 바탕으로 논문을 썼다는 주장이다. 한 이공계 교수는 “지도 교수가 선행 연구 찾아주고, 실험 설계하고, 논문 고쳐주고 해도 교신 저자로 올라가는 게 상식이고 또 보람”이라고 했다. 만약 제자들의 주장대로 이 후보자가 제1 저자가 돼야 한다면 이들은 학위를 반납하고 충남대는 감사를 받아야 할 일이다.
“제자의 성장을 큰 행복으로 여겨 온 분”인 이 후보자를 제자들이 정말 돕고 싶었을지라도 이를 “일반적인 연구실 분위기였다”고 말한 건 더욱 놀라웠다. 공개적으로 연구 윤리 위반을 실토하고 학문적 엄밀성을 부정한 발언이었다. 그런 연구 풍토이니 제자 논문 속 비문을 복붙하고, 오타까지 베낀 이 후보자의 논문이 나왔나 싶었다. 성실한 동대학 연구자들은 기가 찼을 것이다.
‘예산 표절’로 서울대 만들겠다니이 후보자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공약 추진을 위해 발탁됐다고 한다. 거점국립대학 학생 1인당 교육비를 서울대 수준까지 올려 ‘서울대 10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현재 서울대의 1인당 연간 교육비는 평균 6059만 원으로 지역거점대학 평균(2450만 원)의 2.5배가량 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5년간 재정을 투자해 그 격차를 줄이고 서울대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을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예산을 표절한다고 서울대 10개가 뚝딱 만들어질 리 없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처음 제안한 건 김종영 경희대 교수다. 그는 저서에서 서울대 10개를 제안했을 때 주변 반응을 소개했다. A 대학같이 놀고먹는 교수들을 위해, B 대학같이 공부 안 하는 사람들을 위해 “왜 수조 원을 써야 하냐”는 냉소가 돌아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예산 투자와 구조조정이 병행되지 않으면 ‘서울대 10개’는 기만이라고 썼다.
이미 거점국립대들은 특정 학과만 지원하면 매년 3000억 원, 대학을 지원하면 매년 3조 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개혁 방안이나 전략적 로드맵을 제시했다는 대학은 없고 ‘돈타령’만 들린다. 논문 표절같이 나태한 연구를 해 왔던 이 후보자가 이런 대학들에 구조조정이나 연구 성과를 요구할 수 있겠나. 아니 최소한 왜 수조 원을 투입해야 하는지에 답할 순 있나.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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