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문병기]냉전시대 ‘한반도 단검론’의 부활이 예고하는 것

1 day ago 9

문병기 정치부장

문병기 정치부장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한국을 ‘단검(dagger)’으로 표현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주한 중국대사관은 “선을 넘었다”고 경고하며 격렬한 반응을 쏟아냈다. 청와대는 브런슨 사령관의 발언에 우려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주한미군사령관의 발언에 주한 중국대사관이 발끈해 성명을 낸 것도, 청와대가 사실상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한 것도 드문 일이다.

린치핀에서 단검으로

브런슨 사령관은 단검 발언에 대해 “작전 환경을 설명하려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다른 나라(중국)들이 한국 내 우리의 능력을 어떻게 볼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란 해명은 단검 발언의 의도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낸다.

미국은 한국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설명할 때 주로 ‘린치핀(Linchpin)’이라는 표현을 써 왔다. 린치핀은 수레바퀴가 축에서 빠지지 않도록 꽂는 쐐기다. 집단방위체제를 구축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달리 미국은 아시아에선 한국, 일본 등과 양자 군사동맹을 맺어 영향력을 유지하는 이른바 ‘수레바퀴’ 동맹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한국이 이 수레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하는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는 의미다.

린치핀이 군사와 경제를 포함한 포괄적인 동맹구조 속 한국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표현이라면, 단검은 노골적으로 군사적 목적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한반도 단검론’이 처음 사용된 것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 벌어진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군사전략가들은 청나라와 러시아가 ‘한반도를 일본의 심장을 겨누는 단검’으로 활용할 수 있다며 한반도 병합을 주장했다. 미국과 소련은 이 논리를 이어받았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1948년 기사에서 “러시아가 북한을 장악하고 있는 한 러시아는 그 단검의 손잡이를 놓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이 ‘한반도 단검론’에 발끈한 건 표현의 노골성은 물론 시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빈으로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미중 건설적 전략 안정 관계’에 합의했지만, 미군은 중국에 대한 군사적 견제 강화에는 더욱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중국인 참가자가 ‘아시아에서 미중 간 세력 균형을 추구한다’고 밝힌 피트 헤그세스 미 전쟁부 장관에게 직접 “(단검 발언이) 워싱턴의 승인을 받은 입장이냐”고 물은 이유다.

주한미군을 둘러싼 복잡한 셈법

미국과 중국의 강대국 경쟁 구도가 뚜렷해지는 지금, 제국주의와 냉전 시대에 사용되던 ‘한반도 단검론’이 부활한 것을 그저 우연으로 보기는 어렵다. 시 주석은 지난달 방중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일본의 재무장을 지원하지 말라’며 격하게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시 주석의 북한 방문이 성사되면 한미일 안보협력에 대한 대응이 핵심 의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한미는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을 두고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 있다. 동맹 분담을 강조하는 트럼프 행정부는 이재명 정부의 전작권 전환 의지에 대해 “고무적”이라고 환영하면서도 전작권 전환을 위해선 조건 달성이 먼저라고 강조하고 있다. 정부에선 주한미군의 역할을 한반도에서 중국 견제로 확대하려는 미국이 전작권 전환 조건을 강화해 한미 연합군의 지휘권이 한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으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온다. 한반도 단검론의 부활은 주한미군의 역할을 둘러싼 긴장이 본격화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예고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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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기 정치부장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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