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쓰레기' 넘어 사려 깊은 디자인 향해…2025 광주디자인비엔날레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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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쓰레기’.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기능적으로 불편하거나 부족한 제품을 일컫는 말이다. 별명은 다소 과격할지라도, 예쁜 쓰레기는 곧잘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다. 주로 심미적 감각이나 트렌디함을 중점으로 디자인의 가치를 평가하는 시장의 기준이 반영된 탓이다. 디자인의 새로운 개념을 돌아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2025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지난 29일 막을 올렸다.

규슈대학교(Kyushu University), 텍스타일 카토그래피 실로 그린 지도(Textiles Cartographies)(2025) /광주디자인비엔날레

규슈대학교(Kyushu University), 텍스타일 카토그래피 실로 그린 지도(Textiles Cartographies)(2025) /광주디자인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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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는 ‘포용디자인’이다. 미국의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 영국과 유럽의 인클루시브 디자인(Inclusive Design)과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모든 이가 어려움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말한다. 한국자동차 디자이너 1세대이자 국내에 포용디자인의 개념을 적극 제시한 최수신 미국 사바나 예술대학교(SCAD) 학장이 총감독을 맡아 개막 전부터 많은 이목이 쏠렸다.

최수신 총감독은 “통상 ‘디자인’하면 아름다운 것, 독특한 것, 잘 팔리는 것 등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며 “문고리 때문에 문을 열지 못하면 그것은 문이 아니라 벽인 것처럼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특정인이 아닌 모든 사람이 영위할 수 있는 디자인을 보여드림으로써 많은 이들이 디자인에 대해 지닌 편협한 생각을 깨트리고자 했다”고 전했다.

LEVC 코리아(LEVC KOREA), LEVC TX5 플러그인 하이브리드(LEVC TX5)(2021) /광주디자인비엔날레

LEVC 코리아(LEVC KOREA), LEVC TX5 플러그인 하이브리드(LEVC TX5)(2021)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이번 비엔날레에는 19개국 429명의 참여 작가가 163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감자칼, 포크, 청소도구처럼 일상의 생활용품부터 기후위기와 해수면 상승에 대항하는 구조물, 성소수자와 이민자 등 소외된 존재를 잇는 앱, 신체 감각을 극대화할 수 있는 공간까지 공동의 문제를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한 결과물 등을 소개한다. 네 명의 큐레이터가 ‘세계’, ‘삶’, ‘모빌리티’, ‘미래’ 총 네 개의 관점으로 전시관을 기획해 디자인의 의미와 역할을 성찰하는 자리로 꾸렸다.

본격적인 전시관 입장 전 만나게 되는 인트로존은 포용디자인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사례로 구성했다. 동그란 구 형태의 문 손잡이가 누군가에게 어떻게 불편할 수 있으며, 직선형 문 손잡이가 왜 탄생하게 됐는지, 빨대가 구부러진 모양으로 디자인된 유래를 알아보는 식이다. 이후 들어서게 되는 1전시관에서는 미국, 이탈리아, 일본 등 세계 각국의 대학교의 포용디자인 적용 제품과 작품 등을 통해 글로벌한 포용디자인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이탈리아 응용예술디자인대학(IAAD, Istituto d'Arte Applicata e Design) 작품 설치 전경.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이탈리아 응용예술디자인대학(IAAD, Istituto d'Arte Applicata e Design) 작품 설치 전경. /광주디자인비엔날레

 Savannah College of Art and Design)가 전시한 모둘형 정원 시스템 ‘BloQ’ (왼쪽)과 고령자도 사용 가능한 욕실 및 셀프케어 제품 'alle'. /강은영

미국의 사바나예술대학교(SCAD : Savannah College of Art and Design)가 전시한 모둘형 정원 시스템 ‘BloQ’ (왼쪽)과 고령자도 사용 가능한 욕실 및 셀프케어 제품 'alle'. /강은영

이탈리아 응용예술디자인대학(IAAD: Istituto d'Arte Applicata e Design) 섬유·패션 디자인학과의 연구로 완성된 25벌의 오트쿠튀르 의상 ‘리버스 체인지(Reverse Change)’는 재활용 소재를 활용해 변화와 회복의 이야기를 전한다. 순환경제의 실현과 환경 부담 감소, 지속가능한 미래를 제시하는 패션을 선보인다. 미국의 사바나예술대학교(SCAD : Savannah College of Art and Design)가 전시한 제품도 눈길을 끈다. 손 아귀 힘이 약한 노령자를 위해 고안된 욕실 및 셀프케어 제품 ‘alle’와 어린 아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모두가 야외에서 쉽게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는 모둘형 정원 시스템 ‘BloQ’ 등이나와 있다.

DLX 디자인 랩 x 수의행동학 연구소(도쿄대학교)(DLX Design Lab X Veterinary Ethology Lab), 도시 속 쥐(Rats in the City) (2025) /광주디자인비엔날레

DLX 디자인 랩 x 수의행동학 연구소(도쿄대학교)(DLX Design Lab X Veterinary Ethology Lab), 도시 속 쥐(Rats in the City) (2025) /광주디자인비엔날레

2전시관 입구는 커다란 원형 테이블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미국의 글로벌 키친웨어 브랜드 ‘OXO’의 다양한 제품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국내에서는 상추 등의 야채를 세척한 후 물기를 제거하는 용기로 잘 알려진 OXO는 포용디자인을 적용한 대표적 기업으로 꼽힌다. 이 브랜드의 창립자인 샘 파버(Sam Farber)가 관절염을 앓는 아내를 위해 새롭게 고안한 감자 필러가 포용디자인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사례다.

이외에도 폰트나 색상 등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이 제시된다. 저시력자와 노안자를 위한 ‘다올연구소’의 유니버설 디자인 폰트와 고령자나 색약자 등 시각약자 모두에게 정보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도록 ‘KCC’가 개발한 컬러와 배색 등이 돋보인다.

3전시관은 현대가 노인과 장애인도 탑승하기 편하도록 디자인한 인도의 대표 이동수단 릭샤를 비롯해 영국 택시 브랜드 LEVC 코리아가 휠체어, 유모차, 고령자, 짐 많은 승객 등 다양한 이용자가 쉽게 탑승할 수 있도록 한 택시 ‘블랙캡’ 모델 등 모빌리티에 적용한 포용디자인의 사례를 소개했다. 4전시관은 ‘로보틱스, 인공지능, 자연, 웰빙’ 등 네 가지 키워드로 인간과 기술의 공존이 윤리적 방향으로 나아가는 디자인을 이야기한다.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제작된 팽민욱 작가의 작품 ‘스시 2053’와 도쿄에서 1년간 쥐를 관찰한 기록으로 제작된 인터랙티브 설치작품 ‘도시 속 쥐’ 등을 전시한다.

뉴노멀플레이그라운드-강윤정, 감각의 지형(Touchscape), 터치하면 소리가 나는 10개의 모형을 찾는 방식으로 경험하게 된다. 2025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뉴노멀플레이그라운드-강윤정, 감각의 지형(Touchscape), 터치하면 소리가 나는 10개의 모형을 찾는 방식으로 경험하게 된다. 2025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뉴노멀플레이그라운드-수무, 다리 여섯 개의 풍경(a six-legged landscape), 유아부터 휠체어에 탄 사람까지 다양한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 조성됐다. 2025.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뉴노멀플레이그라운드-수무, 다리 여섯 개의 풍경(a six-legged landscape), 유아부터 휠체어에 탄 사람까지 다양한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 조성됐다. 2025.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함께 구성됐다. 전시의 마지막 종착지인 ‘뉴노멀플레이그라운드: 감각으로 연결되는 놀이터’는 시각장애인, 노령자, 유아 등의 환경을 적용했다. 그들의 입장에서 빛, 소리,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조성해 다양한 감각을 동시에 체험하며 디자인의 진정한 역할과 가치를 생각하는 자리다.

광주비엔날레 윤범모 대표는 “이번 비엔날레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디자인이 지닌 위대함과 감동을 경험할 수 있는 자리”라며 “광주 무등산의 무등(無等)처럼 차별 없고 등급 없는 포용디자인의 상징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비엔날레는 11월 2일까지 이어진다.

강은영 기자 qboo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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