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1970년대 등장해 가수로서 전성기를 누리다가 갑자기 사라져 미술 분야로 전향해 박사와 교수를 지냈고 37년 만에 가요계로 돌아와 지금도 노래하는 인물, 원로 가수 정미조다. 그는 작년에 ‘75’란 타이틀의 앨범을 발표했다. 75는 그의 나이를 가리킨다. 노래는 여전히 우아하면서 그윽하지만 다이아몬드 같은 울림을 간직하고 있다. ‘듣기 좋게 울리는 공기’가 따로 없다. 음악 하면 동시에 따라붙는 장르로 규정하자면 그의 음악은 과연 어떤 장르라고 해야 할까. 아마도 팝 발라드 아니면 재즈 성향의 음악으로 일컬을 것이다. 그런데 50년 전에 발표해 사랑받은 곡 가운데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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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휘파람을 부세요’는 각각 작곡자가 송창식과 이장희다.
포크 음악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포크의 위대한 전설들이다. 이 곡들로 정미조는 김세환, 송창식과 함께 1975년 MBC 10대 가수상을 수상했다. 그의 음악에 포크의 기운이 흐른다는 말이다. 흔히 블루스나 소울로 분류하는 동시대의 가수 임희숙의 경우도 포크 뮤지션인 백순진 작곡의 ‘돌아와 주오’와 포크 시인 백창우가 쓴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를 불러 큰 사랑을 받았다. 이렇게 되면 한편으로는 음악은 음악일 뿐 쓸데없이 왜 장르로 나누는 것인가라는 비판이 떠오를 테고 다른 한편으로는 포크 음악이 이렇게 다른 스타일의 음악과 자연스럽게 융합하는 ‘보폭’이 큰 음악이라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
지금 유행하고 있는 음악 가운데 포크라고 특정할 수 있는 노래와 가수가 없을 것 같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포크의 기운이 흐르는 곡은 얼마든지 있다는 뜻이다. 수개월 동안 음원차트 상위권을 지키고 지금도 애청되고 있는 황가람의 ‘나는 반딧불’도 그렇다. 원래 중식이밴드의 비주류 곡이었다가 올해를 빛낸 히트송으로 점프한 이 곡을 ‘포크적’이라고 정의했다고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
록이 그렇듯 대표적인 베이비붐 세대의 음악 문법인 포크가 세월에 밀려 K팝의 무소불위 공세에 눌려 거의 사라진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K팝이 모든 음악적 담론을 무자비하게 흡수하고 있는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세계적 성공의 독점적 포효에 솔직히 음악 세포 내에 흐름이 정체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아직도 록은 펄펄 날고 포크는 꿈틀거린다.
통기타와 보컬이라는 단순 재료가 끌어내는 담백함은 음악이 주는 무수한 맛과 멋 가운데 결코 사라질 수 없는 미학이다. 어떤 세상이 오더라도 이런 정서가 요구될 때 포크 터치의 이지 리스닝 음악은 다시 돌아오게 돼 있다. 보아는 김민기의 ‘가을편지’를 불렀고 아이유는 양희은의 ‘가을아침’을 리메이크해 음원차트 정상에 올랐으며 임영웅이 부른 노래 가운데 사람들은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가장 많이 기억한다.
돌아온 정미조는 자신의 목소리가 예전에 비해 손색이 없다는 반응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 목소리를 창고 속에 집어넣고 37년 만에 꺼내 먼지를 털고 기름칠해서 가동을 해봤는데 옛날처럼 써지는 게 신기했다”. 어쩌면 이게 포크의 ‘타임리스’ 매력 아닐까. 외부 충격에 의식을 잃은 것 같고 동시에 수동성과 무기력이 퍼진 듯해도 실제론 묵직하게 호흡 중인 것이다. 왁자지껄 달려들어 K팝과 트롯만 모시지 말고 그와 함께 록, 재즈, 싱어송라이터 음악, 저 옛날 빈티지 음악 그리고 포크가 비록 용오름이나 토네이도는 아니더라도 은은히 빛을 발하도록 음악계는 다채로움을 추구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지난 주말 파주 임진각에선 포크 페스티벌이 열렸다. 전야제에서 유리상자와 황가람이 만나 신구의 조화를 선사한 것을 비롯해 거장 정미조, 김세환, 최백호 그리고 젊은 옥상달빛과 박혜경이 연이어 무대를 가져 관객들의 열띤 호응을 끌어냈다. 행사의 총기획자인 여행스케치의 조병석은 “세대를 넘기 위해 거장과 영아티스트, 기성세대와 청년세대가 해석하는 다양한 포크의 의미를 담고자 했다”고 밝혔다. 스타일이 여러 갈래로 펼쳐지는 흐름이 신드롬으로 번졌으면 한다. 생각 밖으로 이것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