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부부는 ‘웨딩런’, 투병 아들과 ‘극복런’, 대만 자매도 ‘K런’

12 hours ago 2

서울마라톤 빛낸 이색 참가자들
중증장애 50대 풀코스 완주 기염
70대 어르신 “내겐 마라톤이 의사”
브라질 부부 “함께 뛰니 행복해요”

유모차 밀고, 웨딩 부케 들고, 장애인 손잡고, 대기업 회장도… 서울 달렸다 예비부부 박형민, 구혜인 씨는 ‘우리 결혼해요’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10km 코스를 완주한 뒤 부케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유모차 밀고, 웨딩 부케 들고, 장애인 손잡고, 대기업 회장도… 서울 달렸다 예비부부 박형민, 구혜인 씨는 ‘우리 결혼해요’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10km 코스를 완주한 뒤 부케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유모차 밀고, 웨딩 부케 들고, 장애인 손잡고, 대기업 회장도… 서울 달렸다 16일 열린 2025 서울마라톤 겸 제95회 동아마라톤에 참가한 남성이 출발점인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아이 유모차를 밀며 달리기를 시작하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유모차 밀고, 웨딩 부케 들고, 장애인 손잡고, 대기업 회장도… 서울 달렸다 16일 열린 2025 서울마라톤 겸 제95회 동아마라톤에 참가한 남성이 출발점인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아이 유모차를 밀며 달리기를 시작하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쌀쌀한 날씨에 부슬비까지 내렸지만 러너들의 열정은 막을 수 없었다. ‘2025 서울마라톤 겸 제95회 동아마라톤’이 열린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마라톤 참가자들로 가득 찼다. 1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연령은 물론이고 대만 브라질 등 여러 국적의 참가자들은 광장을 뜨거운 열기로 수놓았다. 풀코스(42.195km) 1만9007명, 10km 코스 1만8615명 등 참가자는 3만7622명에 달했다. 이들은 광화문광장, 청계천, 한강, 잠실운동장 등 서울 도심과 랜드마크를 가로지르며 달렸다.

● 결혼 앞둔 ‘웨딩런’, 근육병 알리는 ‘극복런’

“뛰는 와중에 많은 분들께서 ‘결혼 축하한다’고 응원을 해주셨어요. 비가 와서 조금 힘들었지만 그만큼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이날 10km 코스를 완주한 구혜인 씨(37)와 박형민 씨(41)가 말했다. 이들은 약 2주 앞둔 결혼을 기념하고자 이번 대회에 참여했다. 2023년 러닝 동호회에서 만났다는 두 사람은 ‘we are getting married’, ‘우리 결혼해요’란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었다. 구 씨는 면사포를 쓰고 부케도 든 채 10km를 뛰었다.

마라톤 10년 경력의 배종훈 씨(59)는 근육병을 앓고 있는 아들 재국 씨(29)와 함께 풀코스를 약 4시간 만에 완주했다. 배 씨는 아들의 휠체어를 끌고 달렸다. 배 씨는 “아들의 근육병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유모차 밀고, 웨딩 부케 들고, 장애인 손잡고, 대기업 회장도… 서울 달렸다 권오갑 HD현대 회장이 서울 중구 세종대로를 달리는 모습. 스포츠 마니아로 알려진 권 회장은 꾸준히 동아마라톤에 참가해 왔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유모차 밀고, 웨딩 부케 들고, 장애인 손잡고, 대기업 회장도… 서울 달렸다 권오갑 HD현대 회장이 서울 중구 세종대로를 달리는 모습. 스포츠 마니아로 알려진 권 회장은 꾸준히 동아마라톤에 참가해 왔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74세의 권오갑 HD현대 회장도 마라토너들과 함께했다. 꾸준히 동아마라톤에 참가하고 있는 권 회장은 해병대 공수유격대장 출신으로 골프, 수영, 암벽등반 등을 즐기는 스포츠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그는 “비도 오는데 주변 사람들이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보고 자극을 받아 덩달아 평소보다 더 열심히 뛴 것 같다”고 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63)도 이날 풀코스 완주에 성공했다. 안 의원의 6번째 마라톤 풀코스 완주다. 2년 연속 풀코스를 뛴 가수 션(53)은 “오늘 목표는 3시간10분 내로 들어오는 것이었는데 3시간11분 만에 들어와 간발의 차이로 늦어 조금 아쉽다”며 웃었다.최근 직장인들의 최대 취미생활로 부상한 ‘러닝크루’도 많이 보였다. 벤처캐피털 업계에서 일하는 직장인 신동원(46), 신영성(40), 김희진(41), 김제욱 씨(48)는 러닝크루를 결성해 매년 매달 1, 2회씩 마라톤에 참여 중이다. 신동원 씨는 “저희 직업의 특성상 ‘백도’가 없다. 앞으로만 달리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중증 지체 장애를 갖고 있는 박종석 씨(56)도 풀코스를 3시간26분 만에 완주했다. 그는 “나에게 마라톤은 제2의 인생이다. 폼이 엉성할 수 있지만 ‘풀코스도 뛰는데 못할 게 뭐냐’는 마인드가 생겼다. 따분하고 지루함만 있던 인생에 변화가 왔다”고 했다.

유모차 밀고, 웨딩 부케 들고, 장애인 손잡고, 대기업 회장도… 서울 달렸다 시각장애인 참가자 서보원 씨(왼쪽)가 가이드러너 김용정 씨의 손을 잡고 달리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유모차 밀고, 웨딩 부케 들고, 장애인 손잡고, 대기업 회장도… 서울 달렸시각장애인 참가자 서보원 씨(왼쪽)가 가이드러너 김용정 씨의 손을 잡고 달리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 13세부터 87세까지… “마라톤이 ‘의사’”

참가자들은 마라톤을 통해 잃어버린 건강을 찾고,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경북 경산시에서 온 임재영 씨(45)는 “나는 콩팥이 하나가 없다. 마라톤을 접하게 되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건강을 찾게 됐다”고 밝혔다. 서울 양천구에 사는 이종기 씨(62)는 “마라톤을 하면서 혈압약을 안 먹게 됐고 10년 동안 앓던 당뇨가 완치 수준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1시간22분9초 만에 10km 완주를 해낸 김재하 씨(87)는 “젊은 사람들과 함께 섞여 뛰면서 에너지를 얻는다”고 말했다. 10km 코스를 1시간15분 만에 완주한 박문수 씨(74)도 “나에게 마라톤은 ‘의사’다. 죽기 전까지 마라톤을 뛸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버지와 함께 마라톤에 참가한 10대 소년도 있었다. 정영우 군(13)은 “아빠와 함께 뛰니 더 힘도 나고 재밌는 것 같다. 힘들지만 대회도 나가고 친구들과 기록을 비교하는 재미도 있어서 즐겁게 한다. 아빠처럼 풀코스를 빨리 뛰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마라톤 참가를 위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도 많았다. 대만인 자매 클라라 첸 씨(21)와 리사 첸 씨(22)는 이번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날아왔다. 두 사람은 “처음 마라톤에 참여하는데 설렌다. 한국에서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어 기쁘다”고 밝혔다. 브라질인 엘리사 마리아 씨(42)는 남편과 함께 마라톤에 참여하기 위해 경남 거제시에서 올라왔다. 그는 “남편은 풀코스를, 나는 10km를 뛰었지만 함께 참여할 수 있어 행복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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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
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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