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미영 기자] 2010년 겨울, 기록적인 한파가 몰아치던 영국의 한 임대주택에서 홀로 살던 노인이 동사(凍死)한 채 발견됐다. 가스요금이 폭등하자 난방비를 아끼려 보일러를 켜지 않아 벌어진 비극이었다.
당시 영국은 60세 이상 노인이라면 소득과 관계없이 매년 200~300파운드를 지급하는 ‘겨울 난방보조금’ 제도를 시행 중이었다. 보조금 지급에도 난방비가 없어 얼어 죽는 극빈층 노인이 있는 반면, 연소득이 수억원에 달하는 백만장자 은퇴자에게도 똑같은 난방비가 지원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영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영국에선 자성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배우 헬렌 미렌을 비롯해 의사, 변호사 등 경제적 여유가 있는 중산층 노인들이 “내게 나오는 난방비를 진짜 추위에 떠는 이들에게 보내라”며 자발적으로 지원금을 반납하는 ‘겨울나기(Surviving Winter)’ 캠페인을 벌인 것이다. 이들은 지원금 반납을 위해 우체국과 복지재단에 줄을 섰고, 이렇게 모인 반납금은 수만명의 취약계층 노인을 구했다.
십수년 전 영국의 뉴스를 오늘날 한국에서 다시 떠올리는 건 ‘기초연금’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노인빈곤 해소를 위해 65세 이상의 소득하위 70% 노인에게 매달 34만 9700원의 기초연금을 지급 중이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 역시 국가 재정을 기계적으로 쪼개어 나눠주는 ‘보편의 덫’에 갇혀 있다. 수백억원대 자산가의 부모, 고가 아파트에 거주하는 은퇴자 등도 소득인정액 기준만 맞추면 기초연금을 오롯이 받는 반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를 받는 절대빈곤층의 노인은 기초연금 수령 시 그만큼 생계급여가 깎인다. 가장 가난한 이들이 도리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소외당하는 역설이 발생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노인 인구 증가로 기초연금에 쏟아붓는 국가 재정은 매년 수조원씩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정부의 ‘2025~2029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기초연금 지출액은 내년 약 25조원에서 2029년 약 28조 2000억원으로 증가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50년 기초연금 지출 규모가 연 46조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도 내놓았다. 25년여 만에 기초연금에 투입해야 할 나랏돈이 84%가량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처럼 재정 부담이 구조적으로 폭증하는 상황에서 소득하위 70%에 기초연금을 정액 지급하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정부가 개편 논의에 본격 착수한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소득이 낮을수록 더 지원하는 ‘하후상박(下厚上薄)’ 원칙에 따른 차등 지급을 해법으로 제시했고,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조만간 개편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선거철이면 “지급액을 더 올리겠다”는 포퓰리즘 공약 경쟁만 난무했던 기초연금 논의가 이제 실질적인 제도 개혁이라는 새 국면에 들어섰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진정한 복지국가의 품격은 ‘얼마를 주느냐’가 아니라 ‘누구에게 어떻게 쓰느냐’에서 결정된다. 아울러 복지국가 국민의 품격은 나보다 어려운 이들에게 양보할 줄 아는 미덕에서 나올 것이다. 영국 노인들이 보여줬던 자발적 연대와 공동체 정신을 우리 정부와 어르신들 모두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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