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집에서 살림하는 게 맞지”…이런 사람, 주변에도 꽤 있습니다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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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집에서 살림하는 게 맞지”…이런 사람, 주변에도 꽤 있습니다 [Book]

입력 : 2026.05.31 05:46

유기농 요리 펼치는 美유튜버
전통적인 여성 역할 강조하며
은근히 백인 우월주의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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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를 해부해온 책들은 대체로 두 개의 의문사 앞에서 멈춰 섰다. ‘누가’ 극우가 되는가, 그리고 ‘왜’ 극우가 되는가. 가끔 ‘어떻게’나 ‘언제’가 끼어들기도 했지만 대개 극우를 바라보는 시선의 출발점은 ‘누가’와 ‘왜’였다. 그런데 이 책은 여기에 새 의문사를 추가한다. 바로 ‘어디서’다.

양극화와 극단주의를 연구한 교수인 신시아 밀러 이드리스는 신간 ‘극우는 어디서 태어나는가’를 통해 극우가 과연 어느 곳에서 태동해 활동하는지를 학술적으로 추적한다. ‘증오를 파는 시장’은 과연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서 암약 중일까. ‘미국과 유럽의 극우 활동지’를 면밀하게 분석한 책 속으로 들어가보자.

과거 미국에서 극우의 주된 활동지는 주로 백인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집회 장소였다. 이곳에서 극우 콘텐츠는 상품화됐다. 참가자들은 차량 트렁크나 접이식 테이블에서 직접 제작한 카세트 테이프 혹은 CD를 판매했다. 그 속엔 극단주의의 언어가 가득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극단주의자들이 만든 상품은 주류라고 보기 어려웠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암시장 거래 품목에 가까웠다. 그러나 지금 미국과 유럽의 극우는 다르다. 그들은 극단주의 이데올로기를 주류 플랫폼에 자연스럽게 끼워 넣으며 기생하고 있다.

미국인 구독자를 겨냥한 한 음식 유튜브는 겉으로만 보면 유기농 레시피를 공유하는 건전한 채널이다. 채소를 직접 기르거나 주부로서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저자가 보기에 이 채널은 ‘백인 아이 낳기 챌린지에 동참하자’는 메시지를 끼워 넣고 있었다. 또 독일의 다른 유튜브 채널은 비건(채식주의) 요리를 보여주면서 채식 식단의 장점을 넘어 중간에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 성분이 젊은 남성의 남성성을 줄일 수 있으므로, 위험한 음식인 두부를 불매하자”고 말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게 그냥 말실수가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극단주의자들이 손수 만든 채널이란 점이다. 음식은 소속감을 나타내며 요리는 정체성과 유관하다. 음식은 민족의 전통문화이기에 이민자들의 낯선 음식은 극단주의자들이 보기에 배타성을 띤다. 겉으론 요리 유튜브임에도 유머, 풍자, 농담 속에 극우 담론이 틈입해 연결되고, 차별을 조장하는 증오 행위로 이어진다는 것. 한 극단주의 미디어 플랫폼은 극우 음악 콘서트를 열면서 극우 성향의 싱어송라이터가 만든 CD를 경품으로 내걸기도 했다.

의류 상품도 극단주의 세력이 파고든 또 다른 전장이다. 먹는 것처럼 입는 것도 정체성을 드러내기에 좋은 시장이기 때문이다.

몇 해 전 미국에선 ‘흰색 폴로셔츠와 카키색 바지’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책의 저자는 여기에도 ‘백인 우월주의 이데올로기’가 숨겨져 있음을 분석해낸다. 아울러 독일에선 나치와 힙스터의 합성어인 닙스터스(Nipsters)가 유행한 적이 있는데, 이들에게는 청소년들도 공략 대상이었다. 극단주의자들이 파는 어떤 티셔츠엔 ‘진정한 다양성을 축하하라’고 적혀 있었다. 문제는 이 문장에서 말하는 다양성이 소수자를 배제하지 말자는 의미가 아니란 점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방독면, 기독교 십자군 헬멧 등이 티셔츠에 새겨져 있었으니 이는 과격화된 폭력의 메시지를 암호화한 것이었다.

종합격투기 클럽에서 극단주의 세력이 활약한 역사도 실제로 있었다.

동유럽 국가의 한 수도엔 격투기 스포츠바가 개업했다. 이곳의 이름은 레콘키스타. 이는 15세기 무슬림을 스페인에서 추방했던 과거를 뜻하는 역사 용어다. 극우세력은 이곳을 운영하면서 ‘남성성과 폭력에 관한 극우적 이상’을 강화하는 데 이용했다. 그들의 논리는 이러했다. ‘신성한 조국을 이민자들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선 그 실천적 활동으로써 운동이 필요하다.’ 신체를 단련해 근육질의 영웅적 전사로 거듭나야 불순물로 더럽혀진 내 조국을 지킬 수 있다는 담론이 깔려 있었다.

굳이 더 언급할 필요도 없지만, 온라인 공간은 극우가 과격화되는 요람과도 같은 장소다. 그런데 저자에 따르면 전 세계 1억명 이상의 이용자를 보유한 한 아동용 온라인 게임도 백인 우월주의의 선전장이었다. 사용자의 23%가 이 게임에서 홀로코스트를 미화하는 식의 백인 우월주의 선전물을 접했다고 답했다. 극단주의자들은 어린이 게임도 극우의 표적으로 삼는다고 책은 꼬집는다.

이 책에서 말하는 ‘장소’는 단지 위치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엔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노골적인 표식이 필요했다. 그러나 어느덧 극단주의자들의 활동장은 음습하고 어두운 지하실이 아니다. 요리 레시피 영상 속에, 게임 속 사물이나 문구 안에, 또 티셔츠의 문구에 극단주의 코드가 자연스럽게 유통된다. 정치 집회에서 자신의 주장을 부르짖지 않아도 가벼운 소비와 취향 속에서 극단주의 담론은 재생산된다고 책은 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섬뜩한 느낌이 불가피해진다. 극단주의자는 더 이상 ‘예외적인 광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놀이 속에서 또 농담 속에서, 극단주의는 활개 친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극단주의는 우리의 일상에 들어와 있다. 원제 ‘Hate in the Homeland: The New Global Far Right’.

사진설명

신시아 밀러 이드리스 지음, 조인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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