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럭셔리 브랜드에게 갖는 몇 가지 고정관념이 있는데, ‘매우 비싸다’, ‘제품이 우수하다’, ‘클래식하다’ 등등이다. 몇 가지는 맞고, 몇 가지는 그렇지 않다. 그중에서도 필자가 주목하는 고정관념은 ‘클래식하다’라는 것인데,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디자인을 가진 몇몇 제품 덕에 얻게 된 선입견인 것 같다. 오히려 디자인을 제외한 다양한 면에서 럭셔리 브랜드는 ‘실험적인 성향’이 강한 편이다.
2016년 7월의 어느 날, 필자는 이탈리아 로마의 트레비 분수 앞 계단에 앉아 잠시 후 열릴 펜디의 창립 90주년을 기념하는 ‘2016~2017 오트 쿠튀르 컬렉션’ 쇼를 기다리고 있었다. 관광객으로 365일 북적이던 장소는 한결 정리된 상태에서 전 세계에서 모인 VIP와 프레스를 위한 패션쇼장으로 바뀌었다. 처음에 트레비 분수에서 쇼가 열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분수 근처에서 열리겠거니’ 지레짐작했다.
그런데 정말로 분수의 윗부분에 유리를 깔고 무대를 만들어 분수의 조각상을 배경으로 쇼가 진행되었다. 패션쇼 후 만난 당시의 아티스틱 디렉터인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는 “펜디는 늘 법칙을 깨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 왔다”고 강조했다. 분수대를 쇼장으로 만든 것과 한여름에도 입을 수 있는 고급 모피 컬렉션을 선보인 것에 대한 그녀의 답인 셈이다.
펜디는 여름에도 입고 다닐 정도의 가볍고 섬세한 모피를 만들어온 브랜드로 유명하다. 철저한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펜디의 모피는 전 세계 여성들의 사랑을 받은 제품이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칼 라거펠트가 1965년 펜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고 나서 “모피는 무겁고 보수적인 옷이 아니라 실크처럼 가볍고 자유로운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라고 공언한 후, 펜디의 모피는 나날이 혁신을 이루었다.
펜디는 밍크와 셰이블 등의 털 길이를 짧게 깎고, 모피만큼 무게를 더하는 가죽 층을 매우 얇게 하는 가공 기술을 발전시켜 묵직함을 크게 덜어냈다. 또한 모피를 레이저 커팅하거나 정교하게 절개하여 레이스 같은 패턴으로 만들어 공기 순환을 높이고, 빛이 통과하는 시각적인 가벼움까지 더했다. 무엇보다 실크나 시폰 같은 원단에 얇은 모피를 결합한 새로운 소재를 통하여 여름에도 착용 가능한 수준으로 만들었다. 전 산업군에 걸쳐 지속가능성을 중요시하는 흐름으로 인해 예전보다 인기가 덜하지만, 펜디의 모피는 ‘가벼움’과 ‘패셔너블한 디자인’으로 모피의 고정적인 이미지를 뒤집은 대표적인 사례였다.
얼마 전 선보인 몽클레르의 ‘퍼피 서머 컬렉션’도 겨울을 대표하는 브랜드의 이미지를 바꾸려는 시도의 하나로, 더 이상 겨울 패션의 아이콘으로만 불리기를 거부하는 몽클레르의 도전이다. 몽클레르는 브랜드의 시그니처인 ‘퍼피함(puffiness)’을 한층 가볍고 밝은 아웃도어 무드로 재해석하여 계절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한다. 다양한 패턴과 그래픽, 컬러의 티셔츠, 윈드브레이커, 경량 패딩 베스트, 산뜻한 레이어링 아이템 등으로 사계절 내내 즐길 수 있는 제품을 선보인다. 이 컬렉션은 급변하는 날씨 속에서도 다양한 스타일링을 가능하게 하며, 산에서 태어난 브랜드임을 증명하듯 아웃도어 활동을 위한 퍼포먼스는 물론 도심에서의 세련된 스타일을 놓치지 않았다.
럭셔리 브랜드의 역사를 살피다 보면 대다수 브랜드의 탄생 스토리는 ‘당시의 흐름을 거스르는 변화’를 DNA로 갖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여성의 양손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핸드백에 체인 스트랩을 부착한 가브리엘 샤넬이나, 말의 시대가 저물고 자동차의 시대가 도래하자 자동차를 타는 여성을 배려한 에르메스의 볼리드 백처럼 시대를 예견하고 변화를 이끌며 지금에 이르렀다. 볼리드는 세계 최초로 지퍼를 적용한 핸드백으로, 덕분에 차가 빠르게 달리는 동안에도 백의 내용물이 쏟아지지 않고 한 손으로도 쉽게 여닫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1920년대에는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볼리드(Bolide)는 프랑스어로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나 경주차’를 의미하는데, 이름 그대로 자동차 시대를 위한 가방이었던 것이다.
2010년대 중반부터 럭셔리 브랜드가 남녀 구분이 아닌 손목의 사이즈를 중심으로 시계를 소개한 것도 실험을 주저하지 않는 기질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이전에는 남성은 40~44mm, 여성은 26~32mm라는 암묵적인 사이즈 공식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남성이 아담한 빈티지와 주얼리 시계를 착용하고 여성이 스포츠 및 기계식 시계를 착용하는 일도 빈번하다. 소비자의 취향이 성별보다 ‘손목 크기와 스타일’ 중심으로 바뀐 것이다. ‘2023년에 여성 구매자의 61.7%가 전통적으로 남성용으로 분류되던 시계를 구입했다’는 <카푸어워치(Kapoor Watch)>의 자료도 눈에 띌 정도로, 패션에서의 젠더리스 룩과 유니섹스 주얼리의 부상 등과 맞물려 이러한 경향이 강화되었다.
까르띠에는 현재 대다수의 시계를 스몰, 미디엄, 라지 혹은 29mm, 35mm, 44mm 등으로 사이즈만 표시하는 경우가 많다. 시계 전문 매체인 <호딩키(Hodinkee)>에 따르면 까르띠에는 탱크, 팬더, 산토스의 캠페인에서 남녀 모델이 모두 같은 사이즈의 시계를 착용하는 모습을 선보이기도 했다. 1912년에 탄생하여 까르띠에 시계의 창조적인 디자인을 대표하는 '똑뛰' 역시 올해에도 재해석을 통한 정제된 디자인과 미니, 스몰, 라지로 분류되는 제품을 내놓았다.
필자는 추억의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사라 제시카 파커가 사랑한 펜디의 백 ‘바게트’가 프랑스 사람이 빵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에 더욱 흥미를 갖게 되었다. 럭셔리 브랜드의 고급스러운 소재의 백에 ‘빵’의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유머! 브랜드의 DNA와 제품력은 유지하되 시대를 앞서가는 행보를 보여주는 럭셔리 브랜드. 인기가 여전한 이유에는 이들의 ‘도전 정신’이 한몫을 하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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