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정 “구리와 스테인리스로, 세계 너머의 세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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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둔황에 위치한 막고굴에서 영감을 얻은 한국 추상조각 1세대 작가 엄태정의 개인전이 서울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엄 작가는 불교 정서를 담은 27점의 작품을 통해 예술과 신념의 융합을 탐구하며, 하이데거의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관객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구상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8월 2일까지 진행되며, 엄 작가는 60년의 경력을 가진 저명한 조형예술가로서 그의 작품은 여러 주요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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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정 개인전 ‘세계는 세계화한다’
둔황 막고굴로 불교 정토 구현
엘리아데·하이데거 사상까지
종교와 철학 넘나든 조각세계
“조각은 한 세계를 세우는 일”
8월 2일까지 아라리오갤러리

‘1000개의 찬란한-막고굴 시대 I’(160x40x36cm). [아라리오갤러리]

‘1000개의 찬란한-막고굴 시대 I’(160x40x36cm). [아라리오갤러리]

수평으로 뻗은 거대한 자연암석, 그곳에 수백 곳의 ‘동굴 골방’이 있다. 중국 둔황에 위치한 불교유적, 그 유명한 ‘막고굴(莫高窟)’이다.

막고굴은 4세기부터 14세기까지, 인간의 손으로 1000년간 축조된 불교예술의 정수다. 붉은 흙빛의 외형과 달리 형형색색 벽화로 그득한 외딴 골방은 각각 하나의 소우주를 이룬다. 소우주가 모인 무수한 골방들 그건 윤회의 형이상학적 공간이기도 하다.

‘한국 추상조각 1세대’인 엄태정 작가가 저 막고굴에서 영감을 얻은 조각을 세상에 펼쳐보인다.

엄 작가는 “조각은 하나의 세계를 그 장소에 건립하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 속에 놓인 비(非)사물의 아우라를 응시하려 했다”고 운을 뗐다.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갤러리에서 개인전 ‘세계는 세계화한다(World Worlds)’를 여는 팔순 노작가를 현장에서 만났다.

엄 작가가 선보이는 작품은 27점. 전시장 문을 열면 작품이 뿜는 아우라 탓에 전시실 공기부터 다르다. 깊은 상징을 조각에 부여하고, 이로써 예술적 신성(神聖)을 지향하는 작가의 심연 때문이다.

“신학철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는 ‘성과 속’에서 성(聖)이 속(俗)된 세계를 사는 인간의 삶을 질서화한다고 봤다. 눈앞에 현존하는 모든 사물은 사물의 단순한 집합이 아닐 수 있다. 조각도 그렇지 않은가. 조각은 세속의 대상으로부터 의미를 발견하는 일, 신비로운 장소에 고유한 질서를 세우는 일이다.”

‘막고굴 시리즈’는 현실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현실에 속하지 않은 것만 같은 엄 작가의 예술세계를 응축한다. 엄 작가가 빚은 여러 개의 동굴들은 지상에 구현된 불교식 정토(淨土)다.

전시장의 관람자는 사각 동굴의 외부에서 ‘축소된’ 막고굴을 바라보게 되지만, 가만한 심정으로 쳐다보면 관람자의 마음은 동굴 밖이 아닌 안에 머무르고야 만다. 암벽을 파내고 그 안에 결가부좌로 앉은 과거의 한 명의 구도자, 그는 동굴 벽면 작은 창으로부터 스미는 빛을 진리처럼 심상 위에 받아들이려 했을 터. 그 마음이 관람자의 가슴에도 스미듯 전염된다.

불교의 정서가 가득한 작품들이지만 엄 작가는 놀랍게도 크리스천이다. 조각 앞에서 그는 신심을 종횡하며 예술 내에서 합일을 이루는 숭고한 진리를 향하려 한다.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지만, 아우라를 품은 진리가 조각에 반영된다. 막고굴과 함께 이번에 전시한 ‘만다라’ 시리즈도 그렇다. 1cm도 되지 않은 수만 개의 정사각형을 구현했다. 마치 라마교 승려들이 수행하듯이 작품당 석 달쯤 걸려 하나씩 완성했다.”

그는 대화 내내 하이데거에 기댔다. ‘예술작품은 진리가 일어나는 하나의 방식이다. 예술은 진리를 솟아오르게 한다’는 하이데거 문장을 인용했다.

하이데거에게 ‘세계’는 단지 물질적인 대상이 아니었다. 사물들은 그저 그곳에 위치한 개별 사물이 아니라, 사물과 사물이 관계를 맺으면서 의미를 구성한다. 존재들의 관계와 의미가 펼쳐지는 공간이 세계의 본질이 된다.

그래서인지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낯선자의 은신처’ 시리즈에선 엄 작가가 간파한 하이데거식 사유가 짙게 느껴진다. 스테인리스 패널을 둥글게 만 조각으로, 표면에 비추는 빛의 변화와 육중한 크기의 조각은 그저 금속의 집합만은 아니다. 낯선 금속 조각은 그 자체로 관객을 만나며 낯선 존재, 이방인이 된다. 스테인리스 표면 저편으로부터 염결한 정신성을 내뿜는.

1938년 경북 문경 출생의 엄 작가는 1960년대부터 60년 넘게 철, 구리, 스테인레스 등을 사용하는 조형예술의 길을 걸어왔다. 서울대 조소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현재는 서울대 명예교수,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다.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아라리오뮤지움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 중이다.

특히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뜰에 설치된 1995년작 조형물 ‘법과 정의의 상’도 엄 작가의 작품이다.

전시는 8월 2일까지.

‘1000개의 찬란한-막고굴 시대II’(50x50x121cm). [아라리오갤러리]

‘1000개의 찬란한-막고굴 시대II’(50x50x121cm). [아라리오갤러리]

‘만다라-법열-무한주’(145x145cm). [아라리오갤러리]

‘만다라-법열-무한주’(145x145cm). [아라리오갤러리]

‘UM Tai-Jung, 낯선자의 은신처-은빛 베일 출현 I, 출현 II,  출현 III’. [아라리오갤러리]

‘UM Tai-Jung, 낯선자의 은신처-은빛 베일 출현 I, 출현 II, 출현 III’. [아라리오갤러리]

‘한국 추상조각 1세대 작가’ 엄태정 작가. [아라리오갤러리]

‘한국 추상조각 1세대 작가’ 엄태정 작가. [아라리오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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