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이스라엘 관문인 텔아비브 벤구리온 국제공항. 이스라엘 정부 초청으로 찾은 이곳은 평온했다. 2주 전쯤 예멘의 친이란 반군 후티가 쏜 미사일이 방공망을 뚫고 공항 주변에 떨어졌지만 이젠 어느 정도 충격이 가라앉았다. 예루살렘 시민도 일상을 이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예루살렘에서 차로 두 시간 떨어진 가자지구에선 이스라엘군이 대규모 지상작전을 재개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19일 “가자지구를 완전 점령하겠다”고 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소통하겠다는 기세다.
◇가자지구 160곳 맹폭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전역에 공습을 이어가며 하마스 압박 수위를 끌어올렸다. 이스라엘군은 전날 가자지구 재점령을 목표로 ‘기드온의 전차’ 작전에 돌입한 데 이어 19일엔 가자 전역에 걸쳐 테러 조직, 대전차 미사일 발사대, 군사 시설 등 160여 개 목표물을 공격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가자 남부 도시 칸유니스에 대피령을 발령하며 이곳을 “위험한 교전 지역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가자 주민은 피란길에 올랐다. 200만 명이 넘는 가자 주민은 혼란에 빠진 상태다.
이스라엘군은 전날 5개 사단을 가자지구에 투입해 하마스 전투원을 사살하고, 하마스가 건설한 군사 인프라를 파괴했다. 이스라엘군 공격으로 하루에만 최소 1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대규모 지상군을 투입하며 압박하자 ‘조건 없는 휴전 협상’을 제안했지만 협상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남은 인질이 석방되고 하마스가 무기를 내려놓고 살의에 찬 (하마스) 리더들이 추방되고 가자지구가 비무장화된다면 전쟁은 내일이라도 끝날 수 있다”며 “그 이하의 조건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하마스에 ‘항복’을 요구한 것이다.
◇“어떠한 위협도 용납할 수 없게 됐다”
예루살렘 거리 곳곳에선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2023년 10월 7일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관광객이 붐비는 올드시티와 마하네 예후다 시장에는 가자 전쟁 희생자를 추모하고, 인질 귀환을 기원하는 사진들이 빽빽하게 붙어 있었다. 이스라엘 외교부 청사와 크네세트(의회) 앞에는 가자지구 휴전을 촉구하는 반정부 시위대가 진을 치고 있었다.
예루살렘 정부청사에서 만난 아비브 에즈라 이스라엘 외교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은 “이스라엘은 생존을 위해 가자지구는 물론이고 레바논 국경, 시리아 등에서 군사적 억지력을 유지해야 한다”며 “아이언돔에 의존하는 비정상적 현실을 더 이상 정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 이스라엘은 일정 수준의 위험은 감내하고, 하마스와 공존하려고 했다”며 “하지만 2023년 10월 7일 이후 우리는 어떠한 위협도 용납할 수 없게 됐다”고 했다. 하마스가 먼저 이스라엘 민간인을 공격하고 이스라엘 민간인을 인질로 잡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하마스에 억류된 이스라엘 인질은 58명이며 이 중 20명만 생존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하마스의 모든 지휘 체계와 작전 능력을 무력화하는 게 이번 전쟁의 목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핵 위협에 놓인 한국은 어떤 국가보다 이스라엘 상황을 잘 이해할 것”이라고 했다.
◇국제사회 여론은 싸늘
하지만 국제사회 여론은 싸늘하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이날 공동성명을 내 “이스라엘이 군사 행동을 멈추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 “우리는 ‘두 국가 해법’ 달성에 기여할 수 있도록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고 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자치구인 가자지구를 점령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이들 정상은 “이스라엘이 민간인에 대한 필수적 인도주의 지원을 거부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영구적인 (가자 주민) 강제 이주도 국제 인도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했다. 가자 주민을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키는 것은 최근 이스라엘 정부 인사들이 종종 거론하는 방안이다. 과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백악관에서 네타냐후 총리와 회담 후 이런 구상에 동조해 논란을 빚었다.
이스라엘은 지상 작전에 대한 국제사회 비판이 거세지자 3월 초부터 실시한 가자지구 봉쇄를 전날 해제하고 구호품 반입 등을 허용했다. 다만 이번 조치는 오는 24일까지 한시적으로만 유효하다.
예루살렘(이스라엘)=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