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50대 신입사원의 재취업 첫날[정경아의 퇴직생활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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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 절친했던 동료에게 연락이 왔다. 궁금했었는데 그가 먼저 자신의 근황을 전했다. 그는 올 초에 퇴직했다고 했다. 구직활동을 이어오다가 다행히 작은 회사에 들어가게 됐다며 자신에게 해 줄 말은 없는지를 물었다. 잠시 고민하다 내 상황을 떠올렸다. 나는 최근에 재취업을 했다. 직원이라고 해 봐야 대표를 포함해 총 세 명인 회사다. 지인의 소개로 얻은 몇 개월짜리 자리였지만 내겐 참으로 특별했다. 정해진 시간에 향할 곳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커다란 활력이 됐다. 한평생 직장에서 일해 온 터라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첫날부터 당황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대표의 일정으로 오전에는 사수와 둘만 있게 됐는데 분위기가 왠지 묘했다. 그는 30대 중반으로 내게 업무 지시를 할 사람이었다. 사수는 내가 불편했는지 짧은 인사를 마친 뒤로 내내 업무에만 집중했다. 나도 잠자코 있다 보니 어색한 침묵만 길게 이어졌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괜찮았다. 오후 회의를 앞두고 사수가 메신저로 파일을 보내며 출력해 오라고 했다. 순간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직접 해야 한다고? 아무렇지 않은 척 노트북에 USB메모리를 꽂았지만, 설정부터 막혔다. 프린터에 종이를 어느 방향으로 넣는지도 헷갈렸다. 보다 못한 사수가 도와준 덕에 간신히 뽑긴 했으나 돌아서자 방금 본 순서가 가물거렸다. 다음에 혼자 못 하면 어쩌나 덜컥 겁이 났다. 본격적으로 회의가 열리자 머릿속이 하얘지기 시작했다. 대표와 사수가 주고받는 대화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낯선 용어들이 별다른 설명 없이 오고 갔다. 아는 단어가 나와도 앞뒤 맥락을 모르니 흐름을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이제 곧 사수가 하라는 일을 처리해야 할 텐데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제대로 일을 해 보기 전에 분위기 파악부터 막힐 줄은 몰랐다. 아니나 다를까 사수는 회의 후에 공용문서를 확인하라고 했다. 틀을 만들어 뒀으니 필요한 사항을 추가하라고 했다. 일단 알겠다고 대답하고 겨우 찾긴 했는데 작성 방법에서 막히고 말았다. 바로 쓰면 되는 건지, 다운받아 수정해야 하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 한참 뒤 사수는 바뀐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몇 시간의 작업이 허사가 된 것이다. 별수 없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다. 사무실에는 어느새 나 혼자만 남아 있었다. 점심 먹은 것이 얹힌 듯 속이 더부룩했다. 종일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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