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그 약물 때문에 울다가 웃은 대표적인 사람이 김민재 제주 남녕고 역도부 코치(42)다. 그는 한국 올림픽 역사를 넘어 세계 올림픽 역사를 통틀어서도 최고의 반전 드라마를 쓴 사람이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역도 남자 94kg급에 출전한 김민재는 인상에서 한국 신기록인 185kg을 들었다. 기대했던 용상에서는 210kg을 기록했다. 본인이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지만 합계 395kg는 나쁘지 않은 기록이었다. 당시 경쟁자들이 다른 대회 성적과 비교하면 충분히 시상대에 설 만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꽤 좋은 기록에도 불구하고 김민재는 8위에 그쳤다. 경쟁자들은 합계 400kg 이상을 번쩍번쩍 들어 올렸다. 김민재는 “죽을 만큼 열심히 했는데 안 되는 게 있더라”라며 굵은 눈물을 쏟았다. 그는 “다들 약 먹은 거 아냐”라고 허탈하게 말하기도 했다.
무의식중에 내뱉은 말이었지만 사실이었다. 금, 은, 동메달리스트는 물론이고 4위, 6위, 7위 선수도 약물의 힘을 빌렸다는 게 몇 년 뒤에 밝혀진 것이다. 8위였던 김민재의 순위는 수직 상승 해 2위까지 올랐다. 뒤늦게 올림픽 은메달리스트가 된 김민재는 “많은 축하를 받았다. 그렇지만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어떤 종목보다 정직해야 할 역도가 더럽혀 졌기 때문”이라며 “그래도 내가 쏟은 땀과 노력이 보상받았다고 좋게 생각하려 한다”고 말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을 마친 후 한국 역도 대표팀은 초상집 같은 분위기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장미란은 4위에 머물렀다. 메달을 기대했던 남자 최중량급의 전상균도 아깝게 4위를 했다. 하지만 몇 년 후 사정은 180도 달라졌다. 런던 대회에서 도핑이 차례차례 적발되면서 장미란은 동메달을 따게 됐다. 전상균 역시 동메달로 승격했다. ‘노메달’인 줄 알았던 한국 역도는 결과적으로 은 1개, 동메달 2개를 땄다. 김민재는 “처음 도핑 얘기가 나온 게 2015년 말 정도였던 것 같다. 한 명씩, 한 명씩 적발되더니 어느새 내가 은메달리스트가 되어 있더라”고 말했다. 김민재는 2019년 열린 제100회 전국체육대회 기간 중 올림픽 은메달을 받았다.돌이켜 보면 그의 역도 인생도 롤러코스터 같았다. 고교 시절 경량급 유망주였던 그는 대학 1학년 때 돌연 역도를 그만뒀다. 체중 조절이 힘들었고, 부상까지 겹쳐서였다. 중국집 배달과 주유소 아르바이트 등을 전전하다가 현역으로 군대에 갔다.
그가 다시 바벨을 잡은 건 동갑내기 여자친구였던 이연화 씨 덕분이었다. 지금은 그의 아내가 된 이연화 씨 역시 국가대표 역도 선수를 할 정도의 실력자였다.
이전과 달리 체중 조절을 하지 않고 먹고 싶은 거 다 먹어가면서 운동을 했다. 한때 69kg급 경량급 선수였던 그는 85kg 선수가 됐다. 1년 뒤에는 다시 94kg급으로 체급을 올렸다.
체중이 느는 것 이상으로 기록은 더 급격히 늘었다. 당시 그는 코치도 없이 혼자 운동을 했는데 용상으로 거뜬히 200kg을 들어 올렸다.주변에선 난리가 났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김민재가 약을 먹었다”라는 소문이 돌았다. 김민재는 “사실 나도 내 기록을 믿기 어려웠다. 역도 선수들은 대개 일주일에 두세 차례 기록을 점검한다. 그런데 나는 한 달 동안 매일 기록이 올라가는 걸 눈으로 확인했다”라고 했다. 태극마크를 단 후 대표팀에서 체계적인 훈련을 받자 기록은 더욱 일취월장했다.
런던 올림픽에 갈 때도 몸 상태가 최상이었다. 역도 대표팀 내에서 그는 ‘비밀병기’로 불렸다. 연습 때 용상으로 220kg를 번쩍번쩍 들었으니 잘하면 금메달도 가능하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이미 앞에 서술한 대로 그는 평소보다 못한 기록을 들었다. 하지만 김민재는 “내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만약 평소 연습 기록을 그대로 들었다고 해도 메달권에는 턱도 없었다. 약을 먹지 않는 나로서는 약 먹고 경기에 나온 선수들을 이길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부상 등이 겹치면서 김민재는 2017년 은퇴와 함께 역도계를 떠났다. 은퇴 후 잠시 개인 사업을 했던 김민재는 2020년부터 제주 남녕고에서 어린 선수들을 가르치고 있다. 제주도 체육회 역도 전임지도자로 먼저 제주에 자리 잡은 아내의 권유를 이번에도 따랐다. 이 씨가 지역 내 유망주를 발굴하면 김민재가 남녕고에서 키우는 식이다. 처음 왔을 때 단 두 명밖에 없던 선수가 지금은 중학생을 합치면 20명 가량 된다. 지난해 소년체전에서는 여러 선수가 메달도 땄다.
역사(力士) 유전자를 물려받은 세 자녀도 모두 역도를 한다. 장녀 태희 양(16)은 남녕고, 차녀 다현 양(14)은 중학교에서 역도 선수로 뛰고 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막내 명준 군(11)도 역도 선수를 꿈꾼다. 김민재는 “태희는 엄마처럼 용상을 잘하고, 다현이는 나를 닮아서 인상에 강하다”라며 “내가 가르치는 모든 아이들이 다 좋은 선수가 됐으면 한다. 제주를 한국 역도의 중심으로 만들고 싶은 바람”이라고 말했다.
김민재는 2023년 자녀들 앞에서 제 실력을 보여준 적이 있다. 은퇴식을 하지 않고 선수 생활을 그만둔 그가 은퇴 경기로 출전한 2023 전북 아시아태평양 마스터즈 대회가 그 무대였다. 남자 102kg급에 출전한 그는 인상 150kg(1위), 용상 180kg(1위), 합계 330kg(1위)로 3관왕에 오르며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했다. 김민재는 “솔직히 같이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의 메달을 빼앗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크다”라며 “그래도 가족들 앞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축하를 받으며 은퇴하고 싶었다. 팬 여러분께도 절을 올리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고 말했다.
어느덧 제주에 자리를 잡은 그는 주중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주말 낚시로 푼다. 어릴 적부터 오징어를 좋아해 왔던 그는 선상 오징어 낚시를 즐긴다. 제주 일대는 1년 사시사철 오징어를 잡기에 좋은 환경이다. 김민재는 “가끔 생선을 낚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오징어 낚시 위주로 한다”라며 “요즘은 럭비공 만한 갑오징어 철이다. 조금 있으면 살오징어와 한치 철이고, 9월부터는 무의오징어를 잡는다”라고 말했다. 잡은 오징어는 회로도 먹고 숙회로 먹기도 하고, 전으로 만들기도 한다. 김민재는 “오징어 낚시가 내겐 유일한 취미이다. 언젠가는 작은 배를 하나 사서 ‘선장’이 되고 싶다. 내 배를 타고 내가 좋아하는 오징어를 마음껏 잡고 싶다”라고 말했다.
주중에는 누구보다 열정적인 역도 코치로 어린 선수들을 육성하는 그는 4월 11일 세계 도핑방지의 날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했다.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가 마련한 행사에 참가하고, 프로야구 LG 경기의 시구자로도 나섰다. 김민재는 “정직한 땀과 깨끗한 스포츠의 가치를 믿는다”고 시구 소감을 밝혔다. ‘약한 사람’의 입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말이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