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가 LG화학·LG에너지솔루션에 1100억원 규모의 배터리 분리막을 공급한다. 양극재, 음극재, 전해액과 함께 배터리 4대 소재인 분리막을 만드는 SKIET는 약 4년만에 LG에너지솔루션과 신규 계약 맺게 됐다. 2020~2021년 기술유출을 두고 서로간의 소송전을 벌이며 거래를 끊었던 SK와 LG 사이에 화해의 무드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기차 30만대 분리막 미국 공급
SKIET는 미국내 배터리 셀 생산업체에 전기차용 배터리용 분리막을 공급한다고 10일 밝혔다. 회사측은 이달부터 내년까지 전기차 30만대에 해당하는 규모로 계약을 맺었다고 설명했다. 금액으로 치면 약 11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양사간 계약 조건에 따라 고객사명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분리막은 LG에너지솔루션에 공급될 것으로 알려졌다. LG화학이 분리막 원단을 공급받아 가공한 뒤 미국에서 생산되는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셀에 적용된다.
업계는 오랜 악연이었던 두 회사 사이의 달라진 분위기에 주목하고 있다. 2020년 LG에너지솔루션은 자사의 기술을 유출하고 인재를 불법으로 스카웃해갔다며 미국 법원에 SK온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다. SK온도 맞소송을 벌이면서 양측은 거래를 중단하는데까지 관계가 악화됐다. 당시 LG에너지솔루션은 SKIET, SK넥실리스 등 배터리 소재 회사 영업 관계자가 회사 내부로 방문하는 것조차 막았다. ‘형님 간의 싸움’은 SKIET의 실적 악화로 이어졌다. SKIET는 2007년부터 13년간 LG에너지솔루션에 분리막을 공급해 왔는데 2020년 이후에는 기존 장기 계약들이 재계약에 실패하면서 지난해 적자 전환 등의 이유가 됐다.
하지만 미국의 중국산 배터리 소재 배제 정책, 길어지는 배터리 캐즘(대중화전 일시적 수요침체)으로 인한 양측의 실적 악화 등 환경이 변하면서 관계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시장을 좀 더 냉정하게 바라보게 됐다는 의미다.
○“어려운 업계 현실에 냉정하게 판단”
거래 재개의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대중국 제재 강화다. LG에너지솔루션은 SKIET와의 결별이후 선전시니어테크놀로지, 창신신소재 등 중국회사로부터 분리막을 공급받고 있다. 하지만 점점 더 강화되는 트럼프 정부의 대중국 제재에 소재 수급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관세조치는 물론 중국 회사들의 우회 수출을 막기위한 다양한 조치를 강구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내 판매되는 배터리의 경우 한국 회사 제품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SK와 절대 거래하지 않겠다는 이전 경영진과 달리 ‘가격만 맞으면 거래를 재개할 수 있다’는 LG에너지솔루션 현 경영진의 판단도 거래 재개에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현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대표가 실용적인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SKIET가 LG에너지솔루션의 물량을 공급하게 되면서 SK그룹내 또 다른 소재업체인 SK넥실리스도 다시 거래를 재개할 수 있다는 시장의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배터리 동박을 제조하는 SKC의 자회사 SK넥실리스 역시 오랫동안 LG에너지솔루션에 물량을 공급했지만 2020년 소송이후에는 재계약을 맺지 못했다. 당시 공급물량 대부분이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로 넘어가면서 적자 전환이 나타났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