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트페어가 대형화, 국제화의 흐름 속에서 정형화된 모델을 답습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 오사카에서 매해 여름 열리는 아트오사카(ART OSAKA)는 뚜렷한 차별화 전략을 통해 고유한 입지를 구축해가고 있다. 이 페어는 단순히 미술품의 유통과 판매를 위한 장에 그치지 않고, 간사이 지역 예술 생태계의 성장과 자생력을 함께 고민하는 실험적 플랫폼으로 진화해왔다.
2002년, 한국의 키아프(KIAF)와 같은 해에 첫선을 보인 아트오사카는 오사카 역사에 인접한 호텔 그란비아 오사카에서 처음 개최되었다. 2022년부터는 오사카의 대표적 문화유산이자 상징적 건축물인 오사카시립중회당으로 자리를 옮기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이 건물은 20세기 초 지역 시민들의 자발적 기부로 건립된 공공시설로, 지금도 민간 후원과 행정적 협력 속에 운영된다. 그 자체로 공공성과 시민정신을 상징하는 장소에서 개최된다는 점은, 아트오사카가 단순한 아트페어가 아닌 공공예술적 성격을 지닌 페어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최근 ‘더 프리뷰(The Preview)’가 성수동을 벗어나 옛 국립극단인 백성희장민호 극장에서 개최된 사례는, 대형 컨벤션 공간에서 벗어난 비표준 공간을 활용한 페어 모델로 주목받았다. 이는 미술의 물리적 환경과 전시 문법에 대한 인식 전환을 반영하며, 공간이 곧 정체성이 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올해 아트오사카는 오사카시립중회당 1층에 위치한 대형 극장에서 스크리닝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이는 단순한 부대 프로그램을 넘어, 오사카 지역 미디어 아티스트들의 초기 실험부터 현재까지의 흐름을 조망하는 역사적 기획이었다. 영상과 사운드 기반 작품이 여전히 미술 시장에서 ‘판매가 어려운 장르’로 간주되는 현실 속에서도, 아트오사카는 이를 꾸준히 소개하고 아카이빙하며 새로운 관객과 컬렉터를 형성해나가고 있다.
스크리닝 프로그램의 하일라이트는 1998년 같은 장소에서 열린 모리야마 다이도와 나카자토 히로유키의 ‘테크노 테라피(Techno Therapy)’ 퍼포먼스였다. 이 전시는 일본 내 미디어 아트와 퍼포먼스에 대한 대중의 인식 전환을 촉진한 대표 사례였으며, 이런 작품을 다시금 선보이며, 오늘날 아트오사카가 그런 유지를 이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단기적 전시 기획이 아닌 장기적 예술 생태계 구축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되며, 미술의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겨냥한 기획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트오사카의 또 다른 차별화는 지방성(locality)의 강화다. 오사카뿐 아니라 교토, 고베 등 인근 도시의 갤러리들과의 긴밀한 연대를 바탕으로 한 지역 기반 생태계는 아트오사카의 핵심 축이다. 수도권 중심의 대형 국제 아트페어와는 달리, 지역성을 중심으로 확장해나가는 전략을 채택함으로써 간사이 문화권 전체의 미술 인프라를 구축하고, 활성화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일본을 넘어 대만, 한국, 중국 등 동아시아 미술 생태계와의 연계로도 확장되고 있다. 아트오사카에 참여한 갤러리 면면을 보면, 과거 키아프(KIAF)에 참여한 바 있는 일본의 모리 유, 테즈카야마, 토미오 코야마, 요시아키 이노우에와 같은 주요 간사이권 갤러리들은 물론, 한국의 갤러리조선, 갤러리진선, 갤러리신라 등이 함께했다. 대만의 아키 갤러리, 더홍 갤러리, 다이너스티 등도 꾸준히 동참하며 지역 기반이자 국제 지향의 독특한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
2022년부터 새롭게 도입된 Expanded 섹션은 아트오사카의 실험성과 지역 밀착적 운영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점이다. 과거 조선소였던 북카가야(北加賀屋) 일대는 현재 Super Studio Kitakagaya(레지던시), MASK(대형 수장고), M@M(미니 뮤지엄), 그리고 다양한 카페와 복합문화공간이 입주한 예술 지구로 재탄생하고 있다. 익스팬디드 섹션은 이 지역의 문화 기반과 함께 성장하며, 전통적인 부스 형식에서 벗어난 공간 특정적(site-specific) 대형 설치작품을 중심으로 한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올해는 토미오 코야마에서 오노 요코의 초기 설치 작품 <FLY>를 재해석하여 선보였으며, 갤러리조선이 Axl Le라는 새로운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영화감독의 작품을, 테즈카야마 갤러리는 도쿄예대 출신의 유소라 작가의 대형 설치 작업을, 그리고 카와이 마사유키는 영상 피드백과 사운드 시스템을 실시간으로 조합하는 비디오 라이브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는 단순한 전시 이상의 현장성, 몰입성, 그리고 기술적 상호작용성이 살아있는 ‘퍼포먼스 기반의 설치’로, 아트페어와 예술 실험이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였다.
이 섹션은 지방 부동산 기업인 Chishima Real Estate의 지원과 함께 오사카시, 일본 문화청의 협조 속에 운영되고 있으며, 지역의 도시 재생과 예술 생태계 확장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 달성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트오사카의 운영 방식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참가 갤러리들이 운영위원으로 페어 운영에 직접 참여한다는 구조다. 이는 단순히 작품을 출품하는 데 그치지 않고, 페어의 방향성, 일정, 홍보 전략에 대해 공동으로 고민하고 결정한다는 점에서, 참가자와 주최자의 경계를 허무는 협력적 모델로 기능하고 있다.
페어의 주요 오거나이저 중 한 명인 노리코 미야모토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트 오사카에 참여하는 갤러리들은 미술사적 가치 형성에 기여하는 것을 매우 중시합니다. 물론 판매는 중요하지만, 새로운 참가 갤러리 역시 이런 아트 오사카의 철학에 공감하고, 갤러리를 대표하는 작가군의 유형에 공통점을 가진다면, 아트오사카 내에서 의미 있는 관계를 빠르게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공통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다른 페어들과 달리, 참가 갤러리들이 주최 측의 운영에 불만을 토로하기보다 함께 만들어가는 분위기가 정착되어 있다. 아트페어 오거나이저들 역시 대부분 간사이 지역 갤러리에서 근무 경력이 10년 이상으로, 현장의 니즈를 빠르게 파악하고 운영에 반영할 수 있는 감각을 갖추고 있다. 이 점은 참여자들의 신뢰를 구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다른 아트페어의 보도자료마다 강조되는 참가국 수나 갤러리 수 기준으로 보면 갤러리 섹션 44개, 익스팬디드 섹션 19개로, 아시아에서 열리는 키아프나 프리즈 서울, 타이페이 당다이나 도쿄 겐다이, 아트콜라보레이션교토 등 다른 아트페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규모이다. 그러나 이 페어가 구축한 네트워크의 질적 밀도와 지속성, 그리고 지역에 대한 애정과 실험정신은 그 어떤 대형 페어보다 깊고 단단하다.
아트오사카는 단지 예술작품을 사고파는 장소가 아니다. 간사이 문화권을 이해하고, 경험하며, 미래 동아시아 미술 생태계의 새로운 네트워크를 실험하는 창구로 작동하고 있다. 로컬 기반의 국제 페어로서, 아트오사카는 한국 미술계에도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박준수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