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톰’ 작가의 반성[횡설수설/신광영]

1 day ago 7

1970∼80년대 국내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된 ‘우주소년 아톰’의 원작자는 일본에서 ‘만화의 신’으로 불린 데즈카 오사무(1928∼1989)다. 40년간 700여 편을 남겼고, 아톰 외에도 ‘불새’ ‘블랙잭’ 등 히트작이 즐비하다. 일본 애니메이션 시대를 연 선구자란 평가도 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으로 유명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도 어려서부터 그의 작품을 보면서 꿈을 키웠다고 한다.

▷거장인 데즈카도 어릴 적엔 또래들의 괴롭힘에 시달렸다. 왜소한 체구에 유난히 두꺼운 테의 안경을 쓴 그를 친구들은 “60m 안경”이라고 놀리곤 했다. 학교 교문에 들어서기 60m 밖에서부터 그의 안경이 보여서 붙게 된 별명이라고 한다. 그가 중고교에 다닌 1940년대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 휩싸인 때였다. 교실도 군국주의로 물들었던 시기다. 데즈카는 귀퉁이에서 만화를 그리다 교사에게 한가한 짓을 한다며 얻어맞고, 군수공장에 끌려가 강제노동을 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의대에 진학했지만 미련 없이 만화가의 길을 택했다.

▷일본이 항복한 1945년 8월 15일은 데즈카에게 ‘해방’의 날이었다. 이듬해 18세의 나이로 데뷔작을 발표하면서 “만화의 세계에도 평화가 왔다”고 인사말에 썼다. ‘아톰’ 역시 일본을 패망시킨 원자폭탄에서 주인공 이름(Atom·원자)을 따왔다. 그가 그린 아톰은 자신의 힘을 약자를 돕는 데 쓰는 로봇 소년이다. 데즈카는 후배 만화가들에게 “만화를 그릴 때 인권만은 건드려선 안 된다. 특히 특정 민족이나 집단을 깔보진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만화의 아버지’로 추앙받았던 그지만 일본에서 사실상 금서 취급을 당한 작품이 있다. 재일조선인이 겪는 차별을 그린 1970년 발표작 ‘긴 동굴’이다. 2차 대전 때 땅굴 공사에 강제 동원돼 학대와 멸시를 당했던 조선인이 전쟁 후 일본에서 출신을 숨기고 출세하지만 결국 뿌리 깊은 차별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은 주간지에만 실린 뒤 자취를 감췄고, 여러 종의 데즈카 만화 전집에 한 번도 포함되지 못했다. 당시는 강제 징용 같은 과거사 관련 책이 나오면 일본 우익들이 출판사에 테러를 서슴지 않던 시절이었다.

▷반세기 넘게 빛을 보지 못했던 ‘긴 동굴’은 최근에야 다시 세상에 나왔다. 일본 호세이대 출판사가 2일 단행본으로 재출간했다. 어두운 역사를 외면하지 말자는 데즈카의 목소리도 되살아나게 됐다. 그는 ‘긴 동굴’을 내놓기 4년 전인 1966년 한 기고문에서 이렇게 썼다. “조선인들은 군국주의에 희생되고 민족 역사를 짓밟힌 채 강제로 일본에 오게 됐다. 편견과 경멸 속에 수십 년을 살아왔다. 일본인으로서 정말 부끄럽고 죄송하다. 우린 똑같은 일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제대로 반성하고 있는가.”

횡설수설 >

구독

이런 구독물도 추천합니다!

  • 고양이 눈

    고양이 눈

  • 광화문에서

    광화문에서

  • 오늘과 내일

    오늘과 내일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