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신자인가 시민인가
권력자는 히잡 쓸지 말지를 결정… 복종 유도하려 종교적 권위 동원
딸들은 SNS로 저항의식 키워가
父 서있는 지반 쏴 체제 전복 노려
《얼마 전 개봉한 이란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누가 봐도 정치적인 영화다. 2022년 이란의 한 여성이 히잡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 의문사를 당했고, 그것을 계기로 시위가 폭발했다. 모하마드 라술로프 감독은 이 시위를 배경으로 영화를 만들었고, 칸 영화제에 이 작품을 출품한 것을 계기로 정치적 망명을 택했다.》
그래서 권력자는 이데올로기에 호소한다. 그리고 그 이데올로기의 궁극에는 종종 세속을 넘어선 신이 존재한다. 만약 사람들로 하여금 신이 내 편이라고 믿게 할 수만 있다면 고생스럽게 물리적 폭력을 동원하지 않아도 된다. 엄청난 비용을 들여가며 강제할 필요가 없다. 나를 따르라! 신은 내 편이니까! 이 말을 믿어주기만 한다면 작은 비용으로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 이렇게 신정정치는 시작된다.
1979년 이슬람 혁명을 계기로 성립한 이슬람공화국은 그러한 현대판 신정정치의 대표 격이다. 이슬람 혁명의 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는 신이 이슬람법의 유일한 입법자이자 주권자이기에, 정부는 이슬람법에 따라야 한다고 선포했다. 이슬람법은 곧 신의 명령이다. 이란의 국가원수는 대통령이 아니라, 이슬람법을 해석하는 종교적 권위자인 최고지도자다. 이 최고지도자는 국민이 뽑지 않는데도 국민이 뽑는 대통령 위에 있다. 최고지도자는 대통령을 인준하기도 하고 해임하기도 한다.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에 등장하는 아버지 이만(믿음이라는 뜻)은 자수성가로 마침내 판사가 된 사람이다. 그토록 되고 싶었던 수사판사로 승진했건만 그의 마음은 무겁다. 정치범들의 사형을 언도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가 정부에 순응한 덕분에 가정은 유지된다. 그는 딸들에게 말한다. “우린 널 사랑으로 보살폈어. 집에 필요한 건 다 있고.” 그러나 갈등은 시간문제다. 아버지는 히잡 반대 시위자를 처벌하는 위치에 선 반면 딸들은 그 시위에 찬동하기 때문이다. 철저히 종교적인 집안에서 나고 자란 이 딸들은 어디서 새로운 생각과 정보를 얻게 됐을까. 신에게 도전하는 세속의 목소리는 소셜미디어와 휴대전화를 통해 왔다. 휴대전화로 촬영한 실제 시위 장면이 영화에 삽입되는 것은 다큐멘터리의 효과를 주는 동시에, 정보의 새로운 유입 경로를 나타낸다.이만은 딸들이 자신에게 시비하기보다는 복종하길 바란다. “아비인 나에게 조건을 걸어?” 자비로움과 복종이 가족관계의 본질이라고 믿는 아버지는 딸들의 반항을 견딜 수 없다. 결국 가부장은 폭주한다. 막내딸은 아버지의 총을 훔치고, 아버지는 모녀를 감금한다. 아버지와 딸의 갈등은 결국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그 결과는 영화 제목 ‘신성한 나무의 씨앗’이 이미 말하고 있다.
막내딸은 왜 아버지를 직접 쏘지 않고 아버지가 서 있는 지반을 쏘았을까. 딸이 쏘고 싶었던 것은 아버지라는 인물이라기보다는 아버지가 서 있는 체제가 아니었을까. 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아버지의 법은 곧 국법이요, 국법은 곧 신의 말씀이라고 믿는 그 이데올로기 자체를 쏘았다. 변화 대신 불변을 옹호하고, 협상 대신 믿음을 강조하고, 토론 대신 복종을 강요하고, 시민 대신 신자가 되기를 요구하는 신정정치를 쏘았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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