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떼 칼럼] '국중박 신드롬' 뿌리엔 최순우가 있다

1 week ago 12

[아르떼 칼럼] '국중박 신드롬' 뿌리엔 최순우가 있다

2025년 대한민국 문화예술계를 강타한 초유의 현상은 가히 신드롬이라고 불릴 만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선풍적 인기다. 지난 7월 관람객이 70만 명에 육박하며 인산인해가 일상이다. 2023년 418만 명이 방문해 역대 최대 관람객을 기록했는데, 올해 8월에 이미 418만 명을 넘기며 국립중앙박물관 80년 역사상 최초로 500만 명 돌파가 확실시되고 있다.

이 같은 ‘국립중앙박물관 신드롬’은 1945년 개관한 이후 꾸준히 빼어난 우리 문화재를 수집, 보존, 연구, 전시한 덕분이다. 신드롬의 시발점이 된 ‘뮷즈’(박물관 문화상품) 역시 150만 점이 넘는 세계적 수준의 소장품이 있기에 가능한 일인 것이다. 상설 전시 유물만 1만여 점에 달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오늘날 주옥같은 우리 문화유산을 소장한 것은 수많은 이의 노고 덕분이지만 여기에는 혜곡 최순우의 업적이 지대하다.

한국미의 아름다움을 예찬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저서로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진 최순우는 10년간 관장을 지내는 등 40년간 국립중앙박물관에 헌신했다. 개성 출신인 그는 1945년 개성시립박물관 근무를 시작으로 1954년 국립박물관 보급과장으로 전쟁통에 유실될 뻔한 우리 문화재를 지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1966년 박물관 대표로 일본에 강제 반출된 우리 문화재를 환수했고 1974년 관장에 취임해 유럽 미국 등지에서 우리 문화재 순회 전시를 열어 한국의 미를 세계에 알렸다.

<그가 있었기에 최순우를 그리면서>는 최순우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김홍남 유홍준 등 전현직 국립중앙박물관장을 비롯해 우리 예술계를 대표하는 명사 32명이 최순우를 기리는 글을 엮은 책이다. 이들이 꼽은 ‘최순우의 압도적 한 문장’은 최순우를 지극히 존경하는 이들이 꼽은 글이라 더 빼어나다.

‘우리 시대 최고의 안목’으로 최순우를 꼽은 유홍준은 그의 존재 자체가 한국 미술에 축복이라고 말한다. 유홍준이 환상적이라고 칭송한 부석사 무량수전을 예찬한 최순우의 명문(名文)은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 역시 뽑은 글이다.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최순우는 예술가들을 독려해 우리 전통 예술을 부흥시킨 든든한 후견인이기도 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2호 매듭장인 김희진은 최순우 덕분에 국보 하회탈에 매듭을 다는 기회를 얻으며 장인으로서 기량을 키웠다. 그의 일취월장에 최순우는 따뜻한 격려의 글을 남겼다. 매듭의 미를 ‘아리송하다’ ‘곰살궂다’(꼼꼼하고 자세하다)고 표현한 부분에서 그만의 탁월한 미의식이 느껴진다.

“말이 쉽지 사뭇 버림을 받고 있던 그 아리송하고도 곰살궂은 매듭의 가지가지 짜임새와 실을 나르고 물을 들이고 끈을 짜는 일까지 내내 손수 해내야만 제맛을 찾을 수 있는 고된 과정을 20년 가깝게 외롭게 견뎌낸 그의 야무진 의지의 보람이었다.”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전하는 최순우의 원칙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국제적 명소가 된 국립중앙박물관의 지표가 되길 희망한다.

“박물관이 가지고 있는 소장품, 자료는 모두 나라의 것이고 국민의 물건이니 누구에게나 친절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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