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미술·전시업계가 싫어하는 계절이다. 날이 추워지면 전시장을 찾는 발걸음이 끊기기 때문이다. 적잖은 미술관과 갤러리가 1월 문을 닫고 봄 전시 준비에 집중하는 이유다. 하지만 ‘작품 좀 본다’는 사람은 이런 전시 비수기의 갤러리를 노린다. 화랑들이 젊고 유망한 작가를 소개하는 기회로 비수기를 활용해서다.
올해도 강남 화랑가에서는 연초를 맞아 주목할 만한 젊은 작가들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 신사동 화이트큐브에서 열리는 나이지리아계 작가 툰지 아데니-존스(33)의 개인전과 청담동 지갤리에서 열리는 송예환(30)의 개인전이 단적인 예다.
‘서아프리카의 생명력’을 작품에
영국 런던의 나이지리아 이주민 가정에서 태어나 러스킨예술대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뉴욕에서 활동 중인 아데니-존스는 글로벌 대형 화랑인 화이트큐브의 사랑을 듬뿍 받는 유망 작가다. 2021년 런던 본점에 이어 홍콩과 프랑스에서 관객을 만났고, 이번에 서울에서 화이트큐브와 함께하는 네 번째 전시 ‘무아경’을 열었다.
나이지리아 이민자 가정에 뿌리를 둔 그는 서아프리카를 자신의 정신적 뿌리로 여긴다.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요루바 전통’. 요루바는 ‘삶을 축하한다’는 뜻으로, 서아프리카 전통문화 특유의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의미한다. 아데니-존스는 “나이지리아를 비롯한 서아프리카 문화권에서는 자연에 영성적인 치유의 힘이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그가 자신의 작품에 서아프리카 전통 의상과 직물에서 따온 색감, 춤추는 듯한 신체의 모습을 담는 이유다.
아데니-존스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건 지난해 4월 열린 베네치아비엔날레 나이지리아관 천장에 ‘천상의 모임’이라는 회화 작품을 설치하면서다. 이번 화이트큐브 서울에 나온 작품은 당시 선보인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다만 전시가 열리는 계절인 겨울에 맞춰 색을 확 바꿨고, 서울에서 처음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인 만큼 모든 작품을 새로 제작했다. 추상 회화를 비롯한 그의 신작을 만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다음달 22일까지 이어진다.
“인터넷 중독된 사람들, 따개비 같아”
지갤러리에서 개인전 ‘인터넷 따개비들’을 연 송예환은 웹디자이너다. 웹사이트와 앱 등을 디자인하면서 그는 인터넷 중독과 포털 등 거대 플랫폼의 횡포와 인터넷 중독, 알고리즘을 통해 사람들에게 편향된 정보가 공급되는 현상 등 인터넷의 문제점에 주목하게 됐다. “매일 인터넷에 붙어 사는 사람들을 보고 ‘따개비’가 떠올랐어요. 선박이나 해안가 바닥 밑에 엉겨붙어 사는 따개비들과 인터넷에 매달려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비슷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설치와 영상을 결합한 작품 세 점을 통해 유튜브 등 인터넷 플랫폼이 여론을 왜곡하는 현상을 집중 비판했다. 예컨대 ‘회오리’는 마분지로 탑 모양의 구조물을 설치한 뒤 곳곳에 있는 마분지 스크린에 영상 여러 개를 투사한 작품이다. 작가는 “플랫폼이 주는 정보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표현했다”며 “이런 시스템에 문제점이 많다는 것을 전하기 위해 쉽게 망가지는 재료인 마분지로 스크린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송 작가는 지난해 송은미술대상 본선에 참여하고 오는 4월 국립현대미술관 신진 작가 발굴 프로그램 ‘젊은 모색’에 이름을 올릴 15명의 작가로 선정되는 등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전시는 2월 15일까지.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