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는 회의에 매몰…중국은 실제 현장 배치 초점" [강경주의 테크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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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 인근에 위치한 창업 교육 기관 엑스봇파크에서 중국 엘리트 학생들이 창업 아이디어를 나누고 있다. / 사진=엑스봇파크

선전 인근에 위치한 창업 교육 기관 엑스봇파크에서 중국 엘리트 학생들이 창업 아이디어를 나누고 있다. / 사진=엑스봇파크

중국 선전이 '세계의 하청 공장'에서 '로봇 제국'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테슬라·오픈AI 출신 인재들이 잇따라 귀환해 창업에 나서고 중국 정부는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정부의 탄탄한 정책 지원이 이어지면서 "이젠 실리콘밸리가 아닌 선전이 로봇의 미래를 설계한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실리콘밸리서 활동한 中 엘리트들, 선전서 창업

2일 업계에 따르면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프로젝트 '옵티머스'에 참여한 양숴 엔지니어가 지난 1월 선전에 '몬도테크'라는 스타트업을 차렸다. 테슬라에서 머신러닝 엔지니어로 경력을 쌓은 그가 선전으로 돌아간다고 선언하자 실리콘밸리에선 중국 인재들의 자국 귀환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중국 드론 기업 DJI에서 비행 제어 소프트웨어(SW) 아키텍처를 설계한 중국의 대표 과학기술인인 양숴는 홍콩과학기술대와 카네기멜런대를 졸업하고 로봇 제어, 다족 보행, 상태 추정 등의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를 했다.

그는 자신의 링크드인에 "일론 머스크의 범용 휴머노이드 비전은 기술을 경계를 허물고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사회적 상상력을 확장시켰다"면서도 "하지만 작고 접근하기 쉬운 소비자용 로봇이 앞으로 더 의미있는 제품이 될 것이라는 판단 하에 창업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양숴의 발언은 산업 현장에 투입되는 옵티머스보다 실생활에서 쓸 수 있는 소비자용 로봇을 개발하겠단 선언과도 같았다. 작고 실용적인 로봇 개발을 모토로 하는 이 회사의 자본금은 단돈 100만위안. DJI가 배출한 또 다른 중국의 '테크 영웅' 가오젠룽도 몬도테크의 공동 대표로 이름을 올리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중국과학원 교수가 웨어러블 로봇을 설명하고 있다. / 선전=강경주 기자

중국과학원 교수가 웨어러블 로봇을 설명하고 있다. / 선전=강경주 기자

중국계 인재들의 미국 빅테크 이탈과 선전 내 로봇 스타트업 창업 러시는 2023년부터 본격화됐다. 2023년 12월 오픈AI 출신 중국계 엔지니어 로저 장이 선전을 거점으로 반려 로봇 스타트업 '라이트로보틱스'를 설립했다. 지난해 3월에는 구글 출신 과학자 뤄젠란이 휴머노이드 스타트업 '애지봇'의 AI 연구소장으로 합류했다. 애지봇은 2023년 화웨이의 '천재소년' 프로그램 출신 펑즈후이가 공동 창업한 회사다. 뤄젠란은 애지봇에서 첨단 AI 기술 적용을 통해 지능적이고 효율적인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을 이끌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미국 빅테크 출신 중국 인재들이 AI 기반 로봇 개발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흐름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지난 3월 선전에 본사를 둔 로봇기업 유비테크는 세계 최초로 다수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다양한 상황에서 여러 개의 임무를 동시에 수행하는 모습을 공개해 업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유비테크는 중국의 프리미엄 전기차 브랜드 '지커'와 협업해 5세대 이동통신(5G) 스마트 팩토리에서 '워커S(Walker S)'를 훈련 중이다. 수십대의 워커S 로봇이 공장의 최종조립 작업장, 품질검사 작업장, 도어 조립 작업장 등에서 분류, 운반, 정밀 조립 등 다양한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워커 S는 BYD 공장 훈련을 통해 효율성을 2배 높이고 안정성을 30% 개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비테크는 지커 외에도 BYD, FAW-폴크스바겐, 지리 등 중국 자동차 공장에 휴머노이드 로봇을 투입할 계획을 갖고 있다.

중국 광둥성 선전시 난산구 '중국국가인재공원'에 조성된 과학자 거리. 기둥마다 중국을 빛낸 과학자의 이름과 업적이 상세히 소개돼 있다. / 선전=강경주 기자

중국 광둥성 선전시 난산구 '중국국가인재공원'에 조성된 과학자 거리. 기둥마다 중국을 빛낸 과학자의 이름과 업적이 상세히 소개돼 있다. / 선전=강경주 기자

"중국의 제조 공급망 지배력 미국에 큰 위협"

선전에서 로봇 스타트업 창업이 활발한 이유는 광둥성 일대 지역이 세계 최고의 제조 공급망 생태계 보유해서다. 선전은 2022년 'AI 고품질 발전 고수준 응용 추진 가속 행동 계획'을 발표하고 휴머노이드 로봇 제조업 혁신 센터를 설립했다. 상품 개발과 상용화를 위한 인프라를 본격적으로 구축하는 동시에 홍콩, 마카오, 대만 등 인접 지역의 제조업 기반을 연계해 휴머노이드 로봇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전략을 구체화했다. 이 정책은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선전의 '규모 이상 공업기업' 생산액은 처음으로 5조 위안을 돌파하며 3년 연속 중국 1위 '공업 도시' 자리를 지켰다.

특히 공업 분야 중에서도 신흥전략산업이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였다. 선전의 신흥전략산업 분야 지난해 생산액은 1조4490억 위안으로 전년 대비 8.8% 증가했다. 이는 선전 전체 GDP의 42.3%에 해당한다. 신흥전략산업은 △차세대 정보기술(인공지능, 5G 통신, 반도체) △첨단장비 제조(스마트 로봇) △바이오 및 건강(바이오 의약 등) 분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AI, 로봇의 생산 증가율이 각각 12.7%, 15.9%에 달했다.

선전에 본사를 둔 림스다이나믹스의 'CL-1' 휴머노이드 로봇이 작업을 하고 있다. / 사진=림스다이나믹스

선전에 본사를 둔 림스다이나믹스의 'CL-1' 휴머노이드 로봇이 작업을 하고 있다. / 사진=림스다이나믹스

선전은 내친 김에 선전과학기술혁신국 주도로 '로봇기술혁신 및 산업발전 행동계획(2025~2027)'을 발표했다. 이번 계획은 휴머노이드 산업을 중심으로 한 차세대 로봇산업 육성 로드맵이다. 로봇 핵심 부품, AI 칩, AI-로봇 융합기술, 다중모드 인식, 고정밀 동작 제어 기술 등에서 2027년까지 성과를 달성한다는 목표다. 이를 통해 선전시는 기업가치 100억 위안 이상 기업 10곳, 연매출 10억 위안 이상 기업 20곳을 육성하고 산업 전체 규모를 1000억 위안 이상으로 키운다는 방침이다. 관련 기업 수는 1200곳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중국 로봇 산업의 기술적 도약에는 정부의 부품 국산화 정책이 핵심 역할을 했다. 과거 고성능 감속기, 서브모터 등 핵심 부품은 해외 의존도가 높았지만 최근 중국 기업들이 자체 기술력을 빠르게 확보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국산 부품의 성능이 향상되며 로봇 제조 전반의 품질도 개선됐다는 평가다. 지난해 10월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휴머노이드 혁신 발전 지도 의견'을 발표하며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을 국가 차원의 전략 산업으로 공식 명시했다. AI, 하이엔드 제조, 신소재 등 첨단 기술이 집약된 휴머노이드는 향후 컴퓨터, 스마트폰, 친환경차를 잇는 차세대 혁신 플랫폼이 될 것으로 중국은 내다보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세미애널리시스는 보고서에서 "중국의 제조 공급망 지배력이 미국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며 "현 상황에서 고도의 로봇 자동화를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는 중국뿐"이라고 평가했다. 업계 관계자는 "실리콘밸리는 연구와 회의 중심이지만 선전은 실제 조립과 현장 배치 중심"이라며 "데이터 축적에서 미국이 이미 중국에 졌다"이라고 말했다.

선전 국가인재공원에서 인근 테크 기업의 연구원들이 조깅을 하고 있다. / 선전=강경주 기자

선전 국가인재공원에서 인근 테크 기업의 연구원들이 조깅을 하고 있다. / 선전=강경주 기자

선전=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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