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중복상장, 시장에 맡겨야 한다

14 hours ago 2

[시론] 중복상장, 시장에 맡겨야 한다

국내 주주행동주의자들은 주주 보호를 위한 미국식 제도가 옳고 한국은 틀렸다고들 말한다. 이런 주장이 먹혀들어 작년부터 한국 상법학 역사에 길이 남을 개정이 수차례 단행됐다. 그렇다고 미국 제도를 전면적으로 이식한 것도 아니라 어정쩡한 개정이었다. 최근 들어선 상장된 모회사의 자회사 상장, 이른바 중복상장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 역시 이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

정부는 중복상장의 원칙적 금지와 예외적 허용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증시에서 중복상장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주요 근거로 든다. 그러나 미국은 사모시장이 발달해 비상장 단계에서 자본을 조달할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이에 비해 한국에서는 주식시장이 아니면 대규모 자금을 마련하기가 지극히 어렵다. 기업의 선택과 집중은 단순히 한 기업의 성장을 넘어 국가 경제의 명운과 직결되는 핵심 요소다. 대외 의존도가 높고 제조업에 기반한 수출국가에서는 집중적 투자의 중요성이 배가된다. 대규모 투자를 통해 기술적 초격차를 벌려놓지 않으면 바로 따라잡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분할 후 자회사를 상장하지 않는다. 기업 분할법제가 정비돼 있지 않아 ‘세금 없는 구조조정 규정(tax-free reorganization)’인 연방세법 제355조에 근거한다. 한국 회사법은 독일의 1994년 조직재편법상 분할 제도를 받아들이면서도 현지에 없는 인적·물적 분할을 제도화했다. 이 점은 매우 독창적이다. ‘분할회사’의 재산과 채권 채무를 일일이 ‘분할 후 신설회사’에 이전하는 절차를 거칠 필요 없이 간편하게 ‘포괄 승계’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은 보통 별도 자회사를 설립하고 키워서 상장한다. 사실 분할 후 상장이나 큰 차이가 없다. 한국과 다른 것이 있다면 상장 후에는 모회사가 보유한 자회사 주식을 팔아버리거나 주주에게 현물배당함으로써 모·자회사를 완전히 분리한다는 점이다. 완전분리·독립경영이 각사의 기업가치를 높인다고 보기 때문이다. 모회사가 자회사 주식을 팔면 그 자금으로 핵심 사업 재투자, 부채 상환, 인수합병(M&A) 등에 활용한다.

그럼 왜 한국 기업은 완전분리를 선택하지 않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동안 정부가 세제 혜택까지 주며 권장한 한국 특유의 지주회사체제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지주회사체제에서는 모기업이 적어도 비상장 자회사 지분 50% 이상, 상장 자회사 주식 30%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 지주회사체제에서는 회사를 완전분리하는 것보다 지주회사 아래 묶어 두는 것이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룹에서 완전분리되면 그 기업의 평판과 가치는 오히려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대주주가 지주회사 바깥에 회사를 갖고 있으면 사익 편취를 위한 꼼수로 치부돼 대주주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다.

예외적인 경우에만 중복상장을 허용하겠다면서 그 심사기준은 상장 필요성, 주주 소통, 주주 보호, 경영·영업의 독립성 등을 제시한다. 이런 기준은 계량해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고무줄 잣대’가 될 우려가 크다.

적어도 모회사에서 분할돼 나오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자회사를 설립해 상장하는 것만이라도 허용해야 한다. 이때 이해상충 상황에서 충실의무, 독립위원회, 완전한 공정성 등을 준수하도록 하면 된다. 이것이 미국 방식이다. 일본에서도 금융청과 도쿄증권거래소의 기업지배구조 가이드라인을 통해 통제한다. 한국 자본시장도 시장 자율 통제에 맡기면 충분할 정도로 성숙했다. 해외에 만든 자회사를 해외 증권시장에 상장해 외국 자본을 유치하는 것마저 법률로 막겠다는 것은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 위반이 될 수 있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