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청 장애인교원지원단 연수
AI·에듀테크 활용해 시각장애 극복
“장애가 아닌 기술에 초점을 두고 각자 전문성을 개발해서 학교에서 쓸 수 있다면 업무 만족도와 자존감도 향상될 것 같아요.(김헌용 신명중 교사)”
지난 17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에 위치한 서울 에듀테크 소프트랩에서 진행된 서울시교육청의 교사 연수는 다른 연수와 달리 이어폰을 들으며 이루어졌다. 강의자로 나선 교사 목소리 외에도 노트북 화면낭독기 등 다양한 소리가 나오고 있었고, 화면 대신 이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은 시각장애인 교사 6명이었다. 서울시교육청이 올해 전국 최초로 시도한 ‘AI∙에듀테크 장애인 교원지원단’ 연수 현장의 모습이었다.
그동안 장애, 그 중에서도 시각 장애를 가진 교사들은 다양한 연수에 참여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다양한 에듀테크가 등장하고 인공지능(AI)의 도입으로 그 어느 때보다 가능성이 열렸다고 하지만 당장 어떤 플랫폼이 접근 가능한지조차 알 수 없어 수업의 질을 개선하려면 스스로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편도환 신상중 교사는 “지금까지의 에듀테크 연수는 시각 정보 기반으로 진행돼 장애 교사들은 소외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돌아봤다.
이에 서울시교육청은 시각장애인 교사를 위해 장애인·비장애 교원, 접근성 전문가가 모두 함께 하는 이번 연수를 구상했다. 지난 10일부터 시작해 내달 15일까지 총 6차례에 걸친 연수에 참여하는 시각장애인 교사들은 특수학교, 특수학급 교사는 물론 일반학교에서 비장애 학생까지 가르치는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안용원 선도교사의 설명을 들으며 점자정보단말기와 키보드를 바삐 오간 장애 교사들은 오래 지나지 않아 영어 문장의 형식을 설명하는 파워포인트(PPT) 자료를 제작해냈다. 비장애인인 안 교사는 나름대로 장애를 가진 동료들을 위해 고민하고 그에 맞춘 방식으로 연수를 진행했다. 안 교사는 “그동안 일반 연수를 진행할 때는 PPT 화면에 사이트 화면을 캡쳐해서 쓰곤 했는데 이번 연수는 시각장애를 가진 선생님들이 각 칸에 들어있는 지시사항을 오가면서 들을 수 있도록 엑셀을 활용해봤다”고 설명했다.
영어를 가르치는 박준범 오남중 교사는 PPT 제작을 마친 뒤 “요즘 학생들이 종이보다 스마트폰에 익숙한만큼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해 학생 참여형 수업을 많이 하는 것이 좋은데 앞으로 우리같은 장애교사도 쉽게 수업 몰입도를 높일 수 있을 것 같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어 그는 “종이 인쇄물은 우리가 인식할 수 없어 컴퓨터에 입력하고 소리로 바꿔서 들어야 하는데 이런 기술을 활용하면 중간 단계를 크게 줄여 학생과 소통할 시간도 늘릴 수 있겠다”고도 말했다.
비단 일반 학생뿐만 아니라 장애 학생과의 소통에 대한 기대감도 나왔다. 최용수 상계고 교사는 “고교 특수학급은 생활지도가 중요한데 반복 안내나 규칙 지도에 AI가 도움이 된다”며 “오히려 일반 학생보다도 보다 맞춤형으로 잘 맞게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김필우 정인학교 교사 역시 “발달장애, 자폐가 있는 학생들도 요즘은 디지털 세대라 시각의 직관성을 잘 활용한다. 글자를 몰라도 그림으로 원하는 것을 검색해낸다. 에듀테크로 이미지를 활용할 수 있다면 학생과 상호작용하기도 좋아질 것”이라 말했다.
이날은 ‘패들렛TA’를 활용한 수업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업 내용이 완전히 고정된 것은 아니다. 현존하는 다양한 AI·에듀테크 도구의 접근성과 수업 활용성을 다른 교사와 함께 탐색해보고 시각장애를 가진 이에게 맞는 방식을 찾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번 연수 결과를 토대로 접근성을 고려한 AI·에듀테크 서비스 목록과 기본 매뉴얼을 제작해 점자와 오디오북 형태로 보급할 예정이다. 먼저 참여한 이들은 향후 다른 시각장애 교원들에게 연수를 진행하는 역할도 맡게 된다. 현재 서울 기준 840명의 장애인 교원이 있고 이 가운데 50.8%는 시각장애인인만큼 이들의 역할도 크다.
무엇보다 ‘할 수 있는 일’이 더 늘어났다는 데에서 오는 기쁨이 느껴지는 연수 현장이었다. 그 자신이 무려 7개의 AI 유료 구독서비스를 이용할 정도로 원래부터 에듀테크에 관심도가 높았던 김헌용 신명중 교사는 “진짜로 교사가 수업에 필요한 기능들을 잘 모아놨다”고 웃었다. ‘함께하는 장애인 교원 노동조합’ 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한 김 교사는 “장애인 교원은 학교 현장에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인식에 스스로도 갇히기 쉬운데 기술을 잘 활용하면 오히려 일반 교사들을 도울 수도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번 연수를 두고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AI와 에듀테크는 모든 교원과 학생이 차별 없이 배움의 기회를 누리게 하는 도구”라며 “시각장애 교원의 도전과 실천이 교육 현장의 혁신으로 확산되도록 적극 지원하겠다”라고 밝혔다. 이 날 장애인 교원 노동조합은 논평을 통해 “서울시교육청이 쓴 새로운 역사가 향후 장애인교원들의 수업 및 업무 역량을 높이고, 더 나아가 모든 교육 공동체 구성원들의 접근성 보장에 대한 이해도와 참여도를 높이는 발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화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