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엑시트’ 발간 이철승 교수… 사회구조개혁 ‘불평등 3부작’ 완결
한강기적 이룬 평생직장은 옛말… 일본-대만까지 노동시장 확대를
AI-고령화, 또 다른 불평등 만들어… 다양한 ‘탈출 옵션’으로 새길 열어야
22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 연구실에서 만난 이 교수는 “‘오징어 게임’으로 살아남은 승자가 과실을 독식하는 한국 사회를, 패자로 끝나기 전에 ‘엑시트(exit·탈출)’해 다른 게임을 시작할 수 있는 옵션이 열린 사회로 전환하자는 이야기”라고 책을 소개했다.
이번 책에서 이 교수는 ‘기업’에 초점을 맞췄다. 그에 따르면 지난날 우리의 벼농사 문화는 표준화와 협업에 바탕을 둔 생산 시스템과 맞아떨어지면서 ‘한강의 기적’을 일궜다. 기업은 고용 안정과 연공제를 통해 노하우와 기술을 내부에 축적하고 생산성을 높였다. 연공 순으로 위계의 사다리가 만들어졌고, 평가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명문대 입학했으면 능력 있다고 평생 우려먹는 시스템’이 됐다. 문제는 급격한 기술 발전 등으로 그런 시스템이 이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정규직 노동조합이 힘을 발휘하는 최상층 노동시장을 제외하면 이미 ‘평생직장’은 옛말이 됐다. 회사에서 밀려난 이들이 너도나도 자영업을 택했으나 내수 불황으로 폐업하는 자영업자가 한 해 100만 명에 육박하는 실정이다. 이 교수는 “과거 ‘노동시장의 유연화’라면 곧 ‘해고’를 뜻했지만, 이젠 노동의 입장에서도 유연화가 필요하다”며 “개인들이 언제라도 적당한 다른 일자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고 강조했다.하지만 오늘날 한국은 분단으로 사실상 섬이나 마찬가지이고, 내수 시장 규모도 작다. 이 교수는 ‘쌀 문화’를 공유하는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로 ‘엑시트 옵션’을 넓혀야 한다고 제안했다. 같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가진 일본과 대만까지로 노동시장을 확대하자는 것. 유럽연합(EU)이 얻은 것과 같은 ‘규모의 경제’를 도모하자는 취지다. 이 교수는 “5000만 명이 아닌 1억90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노동시장에선 개인의 대안이 훨씬 많아진다”며 “국가는 연금의 상호 호환을 비롯한 제도적 뒷받침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랬다가 되레 한국의 인재를 잃기만 하는 건 아닐까. 이 교수는 “한국은 동아시아에서도 임금이 최고 수준인 만큼 인재가 유출되는 만큼 유입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책에서 이 교수는 인공지능(AI)과 저출생·고령화, 이민의 물결이 어떤 불평등 문제를 만들지도 다뤘다. AI 기반 협업 시스템은 기업의 한국적 위계 구조에 변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봤다. 조직과 자원을 보유한 중장년층보다 청년층이 AI와 관련해 더 많은 지식을 갖기에 헤게모니 다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 이 교수는 또 “AI 기반 지식혁명의 수혜가 기존의 자산계층에 집중될 우려가 있다”며 “국가는 관련 교육을 초등학교 때부터 교육에 광범위하게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출생 문제를 벼농사 체제의 협력 문화와 연결해 분석한 점도 눈에 띈다. 일을 대신 떠맡게 되는 다른 팀원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탓에 출산휴가를 제대로 못 쓰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싱글과 딩크족을 포함해 누구나 출산휴가나 육아휴직과 같은 기간 ‘안식 휴가’를 쓸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비용은 사회보험을 도입해 충당하자는 것이다. 이 교수는 “저소득층과 프레카리아트(저임금·저숙련 노동계층)가 사실상 아이 낳기를 포기하고 있다. 우생학을 사회적으로 실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결혼과 출산이 상층과 정규직의 전유물이 된다면 우리 공동체를 지정학적 위협에서 지킬 힘마저 잃을 것”이라고 지적했다.이민과 관련해선 “이미 농촌과 일부 제조업은 이주민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 단계에 진입했다”며 “그들에게 단계적으로 영주권과 시민권을 부여해 그 에너지를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성문을 열고 넘나들며 우후죽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사회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런 사회에선 정규직과 비정규직, 파트타임 같은 지위가 개인의 조건과 정체성을 규정하지 않을 거예요. 다양한 엑시트 옵션이 있기 때문이지요. 청년들은 다양하고 창의적인 시도를 할 수 있을 겁니다.”(이 교수)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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