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리오시티에 탑재된 BAE 시스템즈의 RAD750 32비트 프로세서는 200MHz의 코어 클럭과 1MB L2 캐시, 메모리는 256MB다. 공정상 150~250나노 공정이다. 최신 스마트폰과 비교해 수십분의 1~수백분의 1 수준이다. 2021년 활동을 시작한 퍼서비어런스 화성 탐사선도 아이폰보다 이십분의 1 수준 정도밖에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구식 반도체를 활용하는 이유는 고에너지 방사선에 대한 내성이 극대화 돼있고, 작동 온도 범위가 훨씬 크며 소비전력도 매우 적기 때문이다. 즉 성능보다는 십수 년 이상 안정적으로 쓸 수 있는 신뢰성이 훨씬 중요하다.
고가의 우주용 반도체 대신 COTS 활용하려는 시도
앞으로도 수십 년 이상 활용되는 위성, 탐사선 등은 이런 프로세서가 계속 활용될 것이다. 그렇지만 민간 기업이 우주를 개척하는 ‘뉴 스페이스’ 시대가 열리면서 고가의 저성능 우주용 부품이 아닌 상용 제품(COTS, Commercial Off The Shelf)을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늘고 있다. COTS는 상업용 기성품, 대량 생산이 가능한 표준화된 산업 제조품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스마트폰의 칩셋이나 컴퓨터용 CPU 같은 모든 산업 제조품이 COTS다.
COTS는 우주용 부품과 비교해 수백에서 수천 배 가량 저렴하며, 높은 성능과 단축된 개발 주기, 비용 효율성 등을 모두 만족한다. 하지만 모든 COTS는 방사능 내성이 없고 자기권 차폐가 존재하는 온화한 환경으로 설계됐다. 십 년은 커녕 단기간 사용 신뢰성도 확보되지 않았다. 하지만 방사능 차폐 전략만 온전히 수립한다면 초고효율, 초고성능을 기대할 있다. 저궤도 위성과 민간 우주항공 시대에서 COTS를 활용하는 것은 대단히 매력적인 선택지다.스트레이츠리서치는 2024년 방사능 차폐재 시장 규모를 15억 달러로 평가했고, 2033년까지 연평균 6.6%씩 성장할 것으로 본다.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트도 2024년 차폐재 시장을 15억 달러(약 2조 600억 원대)로 보고 2032년까지 연평균 4.6%씩 성장할 것으로 본다. 우주 방사능 이외에도 의료 및 산업 분야의 차폐재를 포함하는 시장이지만 성장세가 견고하다는 데는 모든 조사기관의 의견이 일치한다.
차폐없는 COTS는 무용지물, 차폐 기술 확보 및 경쟁 치열해
COTS는 짧은 개발 시간, 저렴한 재료비와 부담 없는 소비, 반복 작업에 최적화돼 있다. 스페이스엑스의 스타링크처럼 동일한 우주발사체를 반복해서 발사하거나, 쉽게 소비되어도 상관없는 조건에 최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차폐 재료를 통해 설계를 최적화해야 한다. 일반적으로는 수소 원소량이 많은 폴리에틸렌과 알루미늄 복합 소재로 둘러싼다. 또 여러 종류의 COTS와 위치, 차폐재의 두께와 밀도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최적의 배치, 설계한다. 이뿐만 아니라 하우징의 열제어, 궤도 환경 분석, 모든 정보를 기반으로 한 시뮬레이션까지 적용해야 한다.
하지만 우주 항공분야가 그렇듯 모든 과정은 비공개다. 방사능 차폐재 개발 기업은 어떤 COTS를 차폐하는지 알지 못한 채 고객사가 원하는 방사능 차폐 성능 확보에만 주력한다. COTS 생산 기업 역시 자사의 제품이 우주 용도로 쓰이는지 알 수 없다. 오로지 COTS를 우주발사체에 넣고 쏘아 올린 당사 기업만 모든 사실을 알 뿐이다. 특정 COTS의 우주 항공 분야 활용 사실이 알려질 경우 COTS 제조사는 단가를 올리고, 경쟁사들은 연구개발 없이 해당 COTS를 우주로 쏘아 올리게 된다. 즉 COTS를 우주로 올리는 그 모든 과정이 원천 기술인 셈이다.
또한 대다수 국가에서 방사능 차폐재와 관련 기술을 국가 주요 자산으로 삼고 국외 반출을 허락하지 않는다. COTS를 차폐하는 재료와 기술도 우주선이나 로켓 기술과 같이 관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스페이스앤빈이 방사선 차폐 설계 기술을 구축하고 있다. 스페이스앤빈은 우주 방사선 차폐 하우징 스쿠텀 R(SCUTUM R)과 COTS 우주 환경 최적화 적용을 위한 설계 과정인 프라이데이(FRIDAY, FAST RADIATION IMPACT DETECTION AND YIELD)를 취급한다.우선 스페이스앤빈의 스쿠텀 R은 폴리이미드, 폴리에틸렌 기반 플라스틱 계열의 차폐재다. 폴리이미드는 온도, 강도, 내화학성에서 우수한 성능을 보이는 고분자 소재지만, 이 자체로는 차폐 기능이 부족하다. 스페이스앤빈은 특정 공정으로 제조된 폴리이미드와 폴리에틸렌, 알루미늄을 조합하고, 프라이데이로 설계를 최적화해 COTS에 대한 우주 방사능 차폐 능력을 확보한다.우주 분석부터 시스템 맞춤형 설계, 실증 검증까지 거쳐
예를 들어 한 우주항공 기업이 상용 반도체 하나를 우주로 발사하기로 했고, 이를 위해 스페이스앤빈을 찾아왔다고 치자. 스페이스앤빈은 어떤 반도체가 우주로 발사되는지는 모른다. 단지 고객기업이 원하는 방사능 차폐 성능을 조율할 뿐이다. 첫 순서로는 NASA, ESA(유럽우주국)에서 제공하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위성임무의 궤도 환경을 분석한다. 임무 경로를 토대로 예상 방사능 수치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한다. 그 다음 예상 방사능 값을 바탕으로 소재별 방사선 비정거리를 분석하고, 어떤 차폐재를 어떤 두께로 설정할 지 계산한다.
소재가 확정되면 차폐 설루션을 도출하고 복합차폐 소재를 설계하고 성능을 분석한다. 그다음 ECSS, NASA 표준안을 바탕으로 COTS 보호를 위한 최적의 하우징 설계에 나선다. 단순히 차폐재를 각 COTS에 두껍게 바르는 게 아니라 2차 방사선을 줄일 수 있는 설계를 반영하여 외벽과 내벽에 구성한다. 우주발사체 1kg당 비용이 최소 1500달러(206만 원대)에서 1만 달러(1376만 원대)까지 들기 때문에 무게와 구조 최적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우징이 완성되면 위성 외부의 우주 정전기와 스파크의 위험을 정밀 분석한다. 우주 정전기는 진공 상태, 극심한 온도 변화와 우주 방사선 등으로 인해 지구상 정전기와 특성이 다르다. 또 비행체의 작동 오류나 손상을 유발할 수 있어 정확한 위험도 평가가 필요하다. 그다음 위성체 내부 부품의 방사선 영향을 정밀 예측한다. 내부에 적재된 COTS에 방사능이 잘 차폐되는지, 내부 부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의 핵심 데이터를 확보한다. 이후 발사 충격과 진동, 온도 변화를 한번 더 시뮬레이션으로 점검하고 기계적, 열적 부하에 따른 시스템 생존성을 확보한다.
모든 과정이 완료되면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양성자과학연구단의 ESCC 표준 준용 과정을 통한 실증 기반 방사선 차폐 성능을 실제로 측정한다. 테스트는 우주 및 자연 방사선 효과의 전자부품 및 생체 영향 등을 확인하는 100 MeV(메가전자볼트) 출력의 저선량 양성자빔 조사 시설에서 진행된다. COTS에 차폐 없이 빔을 발사하면 양성자에 따른 복구 불가능한 오류가 발생한다. 스페이스앤빈은 이 가속기를 통해 국내 최초로 우주 소재 시험을 진행했으며, FRIDAY의 분석 결과 및 양성자 시험 결과와 동일한 결과를 얻었다. 차폐 소재를 적용한 COTS는 양성자 노출 시에도 정상 작동했다.
국방기술품질원 ‘우주환경에 따른 소재 영향분석 및 가이드북 개발’ 시작
스페이스앤빈의 방사선 차폐 기술이 갖는 의의는 대단하다. 국내 기업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쎄트렉아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 AP 위성 등이 우주 산업에서 실적을 내고 있고,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우나스텔라, 이노스페이스 등의 민간우주 기업들도 우주발사체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런 다양한 국내 기업들이 고가의 우주방사선 등급의 부품이 아닌 COTS를 온전히 활용할 수 있다면 국내 우주산업의 발전 속도도 한층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우주환경에 따른 소재 영향분석 및 가이드북은 추후 국가 우주항공 표준 및 인증체계 기반의 기준이 되고, 가이드북 기준의 기술 공유를 위한 우주시스템 품질 신뢰성 확보와 국내 우주 산업 역량 향상, 국내 위성 및 군집위성 수요 대응 등 산업 전반에 다각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뉴스페이스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비용이다. 기존 우주항공 산업은 정부 자금 기반이어서 예산에 대한 우려가 적었다. 반면 뉴스페이스 시대는 자본과 수익성이 바탕이 되어야 살아남는다. 고품질, 고신뢰성 부품은 위성 개발 비용의 50% 이상을 차지하며, 이를 COTS로 교체하는 것만으로 엄청난 수익과 성능 확보를 동시에 이뤄낼 수 있다. 다가오는 뉴스페이스 시대에서는 스페이스앤빈같은 차폐 설루션이 기업의 성장과 직결되는 결과를 제공할 것이다.
IT동아 남시현 기자 (s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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