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기술 물거품 될 뻔"…장인들 은퇴 앞두고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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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하이텍의 기술 장인이 공작기계 표면에 홈을 파는 스크래핑 작업을 하고 있다.  /대성하이텍 제공

대성하이텍의 기술 장인이 공작기계 표면에 홈을 파는 스크래핑 작업을 하고 있다. /대성하이텍 제공

지난 20일 대구 달성군의 CNC 자동선반 제조사 대성하이텍 공장. 온도가 21도로 통제된 작업실에서 5명의 기술 장인이 ‘스크래핑’ 공정을 수행하고 있다. 스크래핑은 공작 기계의 하나인 CNC 자동선반의 주축에 금속 공구로 정밀한 홈을 내는 작업이다. 일종의 완충 공간 역할을 하는 스크래핑이 제대로 구현되면 윤활유를 잘 머금게 돼 공작 기계의 마찰 부하가 35% 줄어든다. 장비 수명은 15년 이상으로 3~4배 늘어난다. 기술 장인의 손끝이 결정한 0.001㎜의 차이가 장비의 10년 후 정밀도를 좌우하는 것이다. 이렇게 제작된 공작 기계는 반도체 부품을 제조하는 장비업체에도 납품된다.

그동안 대성하이텍 경영진은 스크래핑을 배우려는 청년 근로자를 찾지 못해 이런 기술과 노하우가 단절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인공지능(AI)과 센서 기술이 해법으로 떠올랐다. 최우각 대성하이텍 대표는 “스크래핑을 거쳐야 정밀 가공이 가능해진다”며 “AI 비전 카메라로 장인이 금속 표면에 작업하는 스크래핑 공정을 초고해상도로 기록하고 수치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제조 현장에서 AI를 통해 숙련자들이 수십 년간 쌓아온 경험과 직관을 ‘디지털 자산’으로 만드려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기술 장인이 고령화하면서 제조 경쟁력의 핵심인 암묵지(暗默知)가 사라질 수 있어서다.

경북 안동에서 막걸리와 안동소주 등을 생산하는 회곡양조장은 올해 초부터 AI를 학습시켜 발효 공정의 온도와 산도(pH 농도)를 조절하고 있다. 120년 역사를 지닌 회곡양조장은 그동안 고두밥을 발효시키는 2주간 장인들이 수시로 온도와 산도를 점검하고 교대로 고두밥을 젓는 교반 작업을 해왔다. 장인들은 발효조 표면에서 발생하는 기포의 모양이나 냄새만으로도 좋은 발효인지, 과발효인지를 구분해낸다. 이런 기술 노하우를 제대로 갖추는 데는 10년 이상의 숙련 기간이 필요하다.

이런 회곡양조장의 제조 시스템은 AI와 로봇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업그레이드됐다. 우선 AI가 학습한 발효 곡선의 패턴을 반영해 현재 발효조 용량을 기존의 600L에서 2000L 규모로 바꿨다. 교반 작업도 로봇 팔이 대신하고 있다. 권영복 회곡양조장 대표는 “AI 자율 제조시스템이 도입된 이후 생산성이 50.9% 증가했다”며 “장인의 은퇴 속도가 기술 전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까 걱정이었는데 이제 한시름 덜게 됐다”고 털어놨다.

대성하이텍은 앞으로 AI로 수집한 스크래핑 공정 정보를 활용한 로봇 시스템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로봇 팔이 스크래핑 작업을 전담하게 되는 것이다. 산업통상부는 이런 기술력을 보존하려는 기업을 대상으로 AI팩토리, 암묵지 AI솔루션화 등을 지원하고 있다.

전기로 제강업체인 한국철강은 순환자원인 스크랩(부스러기)의 품질 등급을 판정하는 검수원의 암묵지를 디지털로 자산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철강 관계자는 “베이비붐 세대의 고숙련 검수 인력 은퇴가 본격화하면서 이들이 보유한 기술 노하우를 잃게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며 “AI를 활용해 암묵지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구= 이정선 중기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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