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 맛보기] 〈5〉 폴 시냐크의 ‘라로셸,항구를 떠나며’
붓을 꾹꾹 눌러 찍은 점들이
서로 부딪치며 항구 활기 전해
시냐크는 1911년 라로셸을 처음 발견하고, 이곳만의 활기와 다양성에 깊이 매료돼 여러 차례 그림을 그렸다. 라로셸은 중세 시대부터 있었던 도시인지라 오래된 탑과 고풍스러운 선박, 형형색색의 깃발들이 이곳을 배경으로 한 그림들에 자주 등장한다. 시냐크는 항구의 분주함과 눈부신 태양빛, 고풍스러운 건축물들을 직접 보고 수채화로 남긴 다음 유화로 그렸다.
세종미술관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전에서 소개되고 있는 ‘라로셸, 항구를 떠나며’(사진)는 그런 의미에서 생동감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바닷가의 오래된 탑과 물길을 가르며 움직이는 배는 물론이고 선박이 바닷물에 비친 잔상까지 담겼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마치 작은 직사각형 모양의 스티커를 붙인 듯한 크고 작은 색면들이다. 붓을 꾹꾹 눌러 찍은 색면들은 가까이서 보면 파랑, 초록, 분홍의 점들이 모자이크처럼 보인다. 그런데 멀리서 보면 이 색점들이 서로 부딪치면서 배와 바다, 깃발 같은 형체를 이룬다. 이 형체들은 색점 덕분에 진동하는 것처럼 보이고, 이 효과가 물에 반사된 빛으로 반짝이는 항구 도시로 관객들을 이끌고 간다.시냐크는 18세에 클로드 모네의 그림을 보고 감동받아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어린 시절 예술가들이 많은 동네인 파리 몽마르트르 인근 피갈 광장에서 자라면서 많은 예술가와 교류했다. 그러다 1884년 조르주 쇠라를 만나 그의 점묘파 작업 방식과 색채 이론에 큰 충격을 받고 점묘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점묘파는 프랑스 미술사에서 신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움직임 중 하나. ‘라로셸, 항구를 떠나며’는 아프리카 대륙 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몇 안되는 신인상주의 작가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시냐크는 1905년에는 독립 예술가 전시회에서 앙리 마티스를 만나기도 했다. 그와 함께 생트로페에서 여름을 보내며 색채 이론에 대한 생각을 주고받았다. 빈센트 반 고흐도 정기적으로 만나 파리 외곽의 풍경과 카페를 함께 그렸다고 한다.
요트 애호가이기도 했던 시냐크는 프랑스 해안 도시를 따라 요트 여행을 하면서 여러 점의 스케치를 남긴 것으로도 알려졌다. 라로셸에선 항구의 분주함과 햇살, 물결의 리듬에 매료됐다. 시냐크는 “이곳의 빛은 음악처럼 춤춘다”고 했으며, “다채로운 선박과 돛의 색 때문에 라로셸을 계속 찾게 된다”고 말할 정도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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