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고교 교사들이 금품을 받고 사교육업체에 판매한 문제를 학교 내신 시험에 그대로 출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사들이 조직을 꾸려 사교육업체에 문항을 판매한 사례도 적발되는 등 교원과 사교육업계 간 유착 관계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사교육 카르텔’ 사건을 수사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조직적으로 수능 문항을 만들어 사교육업체에 판매한 교사 등 126명을 입건해 100명을 검찰에 송치했다고 17일 밝혔다. 송치 대상은 교원 72명, 사교육업체 강사·임직원 20명,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직원·교수 5명, 사교육법인 3곳 등이다.
경찰에 따르면 업무 외적으로 문항을 만들어 교육업체에 판매한 교사 47명과 해당 교육업체 강사 19명이 부정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는다. 이들은 2019~2023년 수능 관련 문항을 만들었고 사교육업체나 강사에게 판매한 대가로 인당 최대 2억6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문항 판매 단가는 개당 10만~50만원 수준으로 20·40·50개 등 묶음으로 판매됐다. 이들 교원이 받은 금액은 총 48억6000만원에 달했다.
현직 고교 교사 5명은 특정 사교육업체나 강사에게 판매한 문항을 소속 학교 내신 시험에 출제해 업무를 방해한 혐의도 받고 있다. 고교 국어 교사 A씨는 2020~2022년 1·2학년 내신시험을 4회 출제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사교육업체에 판매한 14개 문항을 출제했다. 교사 B씨는 1~5번 문항 순서까지 모두 그대로 출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시험 문항을 만들기 까다로워 가져다 쓴 것이다”며 “학원의 사주를 받거나 한 것은 아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을 꾸려 사교육업체에 문항을 판매한 교사들도 있었다. 수능 검토위원 경력이 있는 대구 수성구의 수학교사 C씨는 수능 출제·검토위원 출신 현직 교원 8명과 문항제작팀을 꾸려 운영했다. 이들은 아르바이트 대학생 7명으로 구성된 문항검토팀 조직을 총괄 운영하며 문항 2946개를 만들었다. 사교육업체와 강사에게 문항을 팔고 대가로 6억2000만원을 챙겼다.
논란이 된 ‘수능 영어 23번 문항 유출’ 의혹에 대해 경찰은 특별한 범죄 혐의를 발견하지 못했다. 계좌와 통신 내역을 분석하고 압수수색을 했으나 대상자 간 유착을 의심할 만한 정황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의혹은 메가스터디 스타 강사 조모씨가 만든 사설 모의고사 교재에 나온 지문이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에 그대로 출제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조씨 등에게 EBS 교재를 미리 제공한 교사들의 업무상 배임 혐의를 확인했다. 조씨 등은 현직 교원 3명으로부터 2017학년·2022학년도 EBS 영어 교재가 정식으로 발간되기 전에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류병화 기자 hwahw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