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의 선율에 발끝으로 그려낸 비극적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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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프레스콜로 막을 올린 드라마 발레 ‘카멜리아 레이디’에서 비극적 결말을 맞는 연인 마르그리트(조연재)와 아르망(변성완)의 모습. /국립발레단 제공

6일 프레스콜로 막을 올린 드라마 발레 ‘카멜리아 레이디’에서 비극적 결말을 맞는 연인 마르그리트(조연재)와 아르망(변성완)의 모습. /국립발레단 제공

1847년 프랑스 파리, 검정 옷을 입은 이들이 오가며 경매 푯말이 세워진 응접실의 물건을 하나씩 거둔다. 남은 물건을 탐하는 내방객은 미묘한 활력이 넘치는데, 음악이 없다. 모든 것이 사라진 거실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마르그리트(조연재 분)의 사진만이 그가 이곳의 주인이었다는 걸 알린다. 넋이 나간 채 이곳을 찾아온 아르망(변성완 분)은 슬픔에 젖어 마르그리트와 지난날을 추억한다. 비로소 쇼팽의 선율이 무대 위로 흐른다.

지난 6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프레스콜로 막을 올린 국립발레단 ‘카멜리아 레이디’는 신분 차이로 인한 비극적 사랑을 절절하게 그렸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고전 발레 속 사랑이 아니라 고통 속에 몸부림치다 자신을 완전히 희생하는 마르그리트의 사랑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춤, 마임, 연기 모든 것이 분절 없이 이어지면서 다채로운 움직임이 3막을 꽉 채웠다.

카멜리아 레이디는 코르티잔(상류층 남성과 계약을 맺고 부유한 생활을 보장받는 대가로 쾌락을 주는 여성)인 마르그리트와 명문가 출신 아르망 간의 사랑이 주된 내용이다. 드라마 발레로, 서사 안에서 주인공의 미묘한 심리 변화를 보여줘야 하기에 어려운 작품이란 평가를 받는다.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동백아가씨(La Dame aux Camelias)’가 원작으로 독일 안무가 존 노이마이어가 1978년 초연한 작품. 국립발레단의 이번 공연은 아시아 초연이다.

화려한 코르티잔의 생활을 보여주기 위해 마르그리트의 의상은 공연 중 11번 바뀐다. 무대에 등장할 때면 그를 흠모하는 남자들이 주변에 몰려들지만 마르그리트의 시선은 항상 아르망을 향해 있다. 아르망은 매번 마르그리트 앞에 엎드리면서 사랑의 마음을 간절하게 표현한다. 그런 아르망의 머리칼을 만지려다 마는 마르그리트의 손길은 이 사랑이 끝내 비극일 것임을 암시한다.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건 주인공들의 몸짓뿐만이 아니다. 무대 위에 또 하나의 무대, 발레 ‘마농 레스코’가 펼쳐진다. 코르티잔 마농과 그를 사랑하는 젊은 귀족 데 그리외는 마르그리트와 아르망을 고스란히 투영한다. 노이마이어는 카멜리아 레이디 원작 소설에서 아르망이 마르그리트에게 마농 레스코라는 소설책을 주는 장면을 아예 액자식 구성처럼 무대로 갖고 왔다.

아르망과 마르그리트의 정서에 관객이 깊이 밀착하도록 하는 건 쇼팽의 음악이었다. 잘 알려진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 등이 사용됐는데, 극 중 주인공들의 상황을 대사 없이도 잘 전달했다. 피아니스트 박종화가 군중 속 한 인물이 돼 무대 위에 마련된 그랜드 피아노로 연주하기도 했다. 오케스트라의 협연도 종종 있었지만, 주로 피아노 선율이 작품 전체를 이어갔다.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한 방을 기대해봤지만 인간의 내면을 파고드는 심리극과 같은 작품인지라 음악적 클라이맥스는 없었다. 무대 위 연출 장치나 소품은 많지 않았다. 반투명 막과 조명을 충분히 사용해 무대에 깊이를 더했다.

중심인물인 마르그리트와 아르망의 2인무는 3막에 걸쳐 심리 변화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전달했다. 1막의 2인무에서는 아르망의 고백에 망설이는 마르그리트의 마음이, 2막 2인무에서는 서로 사랑을 확인하는 두 사람의 행복이, 파국을 앞둔 3막에서는 아르망의 애증과 마르그리트의 비애가 표현됐다. 폐결핵으로 숨이 꺼져가던 마르그리트가 마농과 데 그리외의 환영을 본 뒤 이내 셋이 춤을 추는 장면은 압권. 국립발레단의 카멜리아 레이디는 11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이어진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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