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돌려차기’ 피해자 “경찰 부실수사”
속옷 벗겨졌다는 첫 발견자 진술 확보않고
2심 가서야 바지 안쪽 가해자 DNA 검출
국가상대 소송…1500만원 배상 판결 받아
“보완수사권 없애면 잘못 바로 못잡을수도”

2022년 5월 발생한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진주 씨(30·가명)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낸 이유에 대해 “제가 겪었던 잘못된 수사 관행이 바뀌길 바라는 마음에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고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1심 법원은 사건이 발생한 지 3년 8개월 만에야 수사기관의 부실 수사를 인정하고 국가가 김 씨에게 15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부실 수사의 ‘위법성’이 법원에 의해 인정된 것.
법원 “불합리한 초동 조사로 피해자는 상당한 정신적 고통 겪어”
서울중앙지법 민사31단독 손승우 판사는 2월 13일 “국가는 국가배상법에 따라 수사 기관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해 김 씨가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하며 김 씨 손을 들어줬다.재판의 쟁점은 ‘부산 돌려차기 사건’ 수사를 국가배상법에 따른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볼 수 있는지 였다. 손 판사는 “성폭력의 동기와 정황이 강하게 의심됨에도 불구하고 최초 발견자와 친언니에 대한 진술을 확보하지 않았고, 그에 따른 추가적인 증거 확보를 하지 않았다”며 “수사기관이 이와 같이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현저하게 불합리하다고 인정된다”고 판단했다.그러면서 “수사기관의 불합리한 초동 조사로 김 씨가 당한 성폭력의 성폭력의 구체적인 방식 및 결과 등이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았고, 김 씨가 그동안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임이 자명하다”고 지적했다. 김 씨와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며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김 씨는 통화에서 “사실은 승소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수사기관에 ‘너네가 처음부터 잘해야 된다’고 말하는 의미에서 시작한 소송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10월 검찰청 폐지 후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 등을 신설하는 형사사법체계 개편 과정에 대해서도 우려를 드러냈다. 김 씨는 “수사부터 재판까지 피해자들은 매번 기다려야만 한다”며 “아직까지도 제도개편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없이 국민들에게 마냥 기다리라 하는 것은 국가의 2차 가해”라고 주장했다. 김 씨는 2월 검찰개혁추진단 자문위원회 회의에 참여해 “모든 논의는 범죄 피해자를 최우선적으로 생각해 진행돼야 한다”며 “대안 없이 보완수사권을 없애면 경찰의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가 사라지게 된다. 범죄 피해자에 대한 예산 확대, 판결문 자동 송부 등 피해자 관련 제도 개선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경찰의 초동 부실 수사로 인한 피해자의 경험을 토대로 이같이 말한 것.
김 씨를 대리한 오지원 변호사는 “수사 메뉴얼에도 범죄 피해자와 관련한 가이드라인은 사실상 없는 수준”이라며 “현재 검찰과 경찰의 수사 범위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혼선이 너무 심한 상황이다. 또 수사 과정 전반에서 피해자와 제대로 소통하지 않고 일방적인 결과 통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결정적 증거와 증언 놓친 수사기관…항소심에서야 바로 잡아

그러나 경찰은 열흘간 진행된 수사 끝에 이 씨를 중상해죄로 검찰에 송치하는 데 그쳤다. 사건 당시 의식을 잃었던 김 씨가 “현재 생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성폭행은 없었다”는 말만 믿은 것. 검거된 이 씨의 휴대전화 검색기록에서 ‘부산서면여성강간폭행’ ‘부산강간치상사건’ 등 성폭행 정황을 의심할만한 증거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조사는 면밀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검색 내용이 나왔음에도 최초 발견자였던 주민 등에 대한 추가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유전자 감식도 김 씨가 입던 청바지 겉면과 속옷 상단 등 일부에 국한됐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도 한차례 추가 피의자 조사만 하고 이 씨를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했다.
피해자임에도 사건과 관련된 수사 내용을 전혀 알 수 없었던 김 씨는 1심 공판에서야 자산이 CCTV 사각지대로 옮겨지는 CCTV 영상을 보고 성폭력 가능성을 처음으로 인지했다. 이후 7차례에 걸쳐 “성범죄와 관련 있으니 추가 감정이 필요하다”는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이 씨의 혐의는 변경되지 않았다. 1심에서는 살인미수 혐의로 징역 12년이 선고되는 데에 그쳤다.
항소심 절차에 이르러서야 검찰은 김 씨를 처음 발견한 주민을 증인으로 불러 “바지의 지퍼가 내려가 있는 상태로 속옷을 보지 못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김 씨의 언니 역시 법정에 나와 “속옷이 한쪽 다리에만 걸쳐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제서야 김 씨가 입은 청바지와 속옷 등 의복 일체에 대한 유전자 감정을 진행했고, 청바지 안쪽에서 이 씨의 DNA를 검출했다.결국 검찰은 강간살인미수 혐의로 공소장을 변경했고,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허가한 뒤 이 씨에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사건 발생 487일 만인 2023년 9월 21일 상고 기각 판결을 내리며 이를 확정했다. 이 씨는 김 씨에 대한 보복 협박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올 2월 12일 1심에서 징역 1년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김 씨는 “피해자에게 한 사건은 인생을 판가름 할 정도로 중요하지만, 수사기관이 쏟아붓는 노력은 사건마다 너무 다르다. 나 역시 수사 과정에서 경찰로부터 ‘피의자를 중상해죄로 넘긴다’는 내용 외에 구체적 설명을 들은게 없다”며 “수사기관이 피해자를 단순히 ‘조사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여근호 기자 yeor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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