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공룡 둘리'에서 고길동 목소리 담당하셨던 이재명 성우님이 돌아가셨다는 기사가 떴길래, 슬픈 마음에 눌러봤어요. 그런데 댓글을 봤더니 머리가 아플 지경이더군요."
어린 시절 애니메이션 아기공룡 둘리를 즐겨봤다는 김모(34·여)씨는 최근 기자와 만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거냐"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씨의 머리가 지끈거린 이유는 기사 댓글에 별세한 성우 이재명과 동명이인인 정치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한 내용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좋다 말았네", "우리가 바라는 건 성우 이재명이 아니다", "그 이재명이 아니네", "저승사자가 이름만 보고 잘못 데려갔네" 등 달렸던 댓글을 보면 머리가 아플 만도 했습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국의 심각한 정치 양극화가 국민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옵니다.
지난해 12월 29일 전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무안 제주항공 사고 때도 뉴스 댓글창을 열기가 두려웠다는 시민들도 많았습니다. 사고가 발생한 지역이 전라도라는 점에 주목한 네티즌들이 "또 특검하자 하겠네" 등 정파적인 댓글을 달았기 때문입니다. 광주변호사회 김정호 광주변호사회 왜곡대응팀장은 "수백건을 모니터링 중이지만 보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했습니다.
정당과 진영 간 정치적 적대감이 확산하고 극단적인 정책, 언사 등이 난무하면서 한국 사회는 정치 양극화라는 난제를 직면한 지 오래입니다. 극렬 지지자들과 정치인들의 극언은 어제오늘만의 뉴스가 아니죠. 김현곤 국회 미래연구원장은 "정치 양극화는 현재 한국 민주주의가 처한 위기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고 했습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뷰가 지난 12월 17~18일 유권자 2000명에게 정치 양극화 심각도를 물은 결과 '우리나라 정치적 양극화가 심각하다'는 의견에 94.5%(매우 동의 73.5%·동의 21.1%)가 동의했습니다.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책임이 가장 큰 주체'로는 절반에 가까운 47.0%가 '정치권'을 지목, 그다음으로는 언론(27.1%), 정부(12.0%), 유튜브(11.8%) 등 순이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정치 고관여층의 이런 행태가 일반 시민들의 삶에까지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비상계엄, 탄핵, 참사까지 지난해 12월 한 달 만에 충격적인 뉴스들을 접한 국민의 정신건강이 위협받고 있다는 진단이 나옵니다. 사회적 불안이 큰 상황에서는 과도한 뉴스 시청은 자제하는 것도 방법이라는 조언입니다.
한창수 고려대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면 사람들 사이의 신뢰가 약화되고, 감정적 불편감과 사회적 고립감을 느끼게 된다"며 "이러한 불안정성이 지속되면 정신건강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정치적 불안이 지속될수록 국민 정신건강에 대한 위협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를 넘어 집단 공황과 같은 사회적 불안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도 합니다.
한 교수는 "장기적인 스트레스는 급성 불안장애, 우울증, 심지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또 사회가 불안할 때 뉴스 시청은 중요한 정보 제공 수단이지만, 계속 뉴스나 TV를 보는 것이 항상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그는 "뉴스 확인은 필요하지만, 그 외 시간에는 대화와 취미 활동, 일상의 루틴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