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이 뭔가요?"…삼성전자 6억 돈잔치에 '씁쓸' [이슈+]

3 weeks ago 8

'격려금' 성격이던 성과급 '변화'
과거엔 연공급 보완 장치로 활용
외환위기로 성과배분제 도입 늘어
최근엔 '인재 확보 경쟁 수단'으로
전체 사업장 중 6%만 성과급 도입
협력업체들도 "정당한 보상" 요구

삼성전자 2026년 임금협약 잠정 합의안 찬반 투표를 하루 앞둔 지난 21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사진=뉴스1

삼성전자 2026년 임금협약 잠정 합의안 찬반 투표를 하루 앞둔 지난 21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사진=뉴스1

한국 기업 보상 체계의 오래된 문법이 흔들리고 있다. 삼성전자 노사 간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잠정 합의안이 조합원 찬반 투표를 거쳐 확정될 경우 국내 산업계 전반에 걸쳐 '성과 배분' 공식이 요동칠 것이란 우려가 높다. 이른바 '최태원 상소문'으로 불렸던 SK하이닉스 성과급 사태를 계기로 시작된 '영업이익 N%' 배분 요구는 삼성전자를 발판 삼아 이미 기업 전반에 빠르게 확산하는 중이다.

'격려금'이었던 성과급…'영업익 N%' 노조 표적으로

22일 경영계 등에 따르면 과거 성과급은 회사가 정한 기준을 토대로 사후 지급하는 '격려금'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번 삼성전자 노사 간 합의는 이를 뿌리부터 흔들었다. 노조가 요구했던 경영성과 배분 요구에 따라 새로운 공식이 마련됐다. 회사가 벌어들인 성과를 어떤 산식으로 구성원에게 돌려줄 것인지가 노사 교섭 핵심 의제가 된 것이다.

삼성전자 노사는 영업이익 중 총 12%에 해당하는 몫을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는 데 합의했다. 메모리사업부 임직원은 1인당 최대 약 6억원에 이르는 성과급을 받을 수 있는 규모다. "성과급 산정 기준을 공개하라"는 요구가 터져나왔던 '최태원 상소문' 사태로 SK하이닉스가 '영업이익 N%' 배분 방식을 공개한 이후 삼성전자도 이를 받아들이면서 경영성과를 더는 주주들만의 몫으로 둘 수 없게 됐다.

한국 기업의 성과급 제도는 오랫동안 연공급을 보완하는 장치로 활용됐다. 1987~1988년 이후 임금체계의 연공성이 강해졌고 외환위기 직후인 1997~1998년을 기점으로 연봉제·성과주의 임금체계가 일부 기업에 확산됐다. 과거에는 근속연수·직급이 임금의 중심축이었던 것. 성과급은 주로 영업직이나 일부 직군을 중심으로 운영됐다.

이 구조는 외환위기에 들어서면서 변화를 맞았다. 기업들은 구조조정의 압박 속에서 고정급 부담을 줄이고 성과와 보상을 연결하는 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정부 실태조사를 보면 2005년 설문조사 응답 사업장(749곳) 중 48.4%가 연봉제를, 32.1%가 성과배분제를 도입했다. 외환위기 이후 성과주의 인사관리가 강화되면서 연봉제·성과배분제가 급속히 확산된 영향이다. 당시만 해도 성과급을 둘러싼 논쟁은 '얼마를 나눌 것인가'보다 '성과에 따라 차등 보상할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2010년대 들어 논쟁 무대가 바뀌었다. 정부·경제단체는 복잡한 수당·상여금 중심 임금체계를 단순화하는 대신 직무·능력·성과 중심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금 항목을 단순화해 보상 기준을 분명히 하자는 문제의식도 컸다. 고정상여금 비중을 줄이고 성과와 연동된 상여금·성과급 비중을 늘리는 방향도 제시됐다.

이 시기 성과급은 연공급을 완화하고 인건비 구조를 유연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다뤄졌다. 기업 입장에선 성과급이 고정비를 줄이는 장치였다. 다만 근로자 입장에선 평가 공정성과 임금격차를 둘러싼 불신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본사 모습. 사진=한경DB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본사 모습. 사진=한경DB

'성과급=인재 붙잡는 경쟁 수단'으로…이해관계 충돌도

성과급의 근본적인 전환점은 반도체 호황과 인재 확보 경쟁 속에서 나타났다. SK하이닉스는 직원들이 성과급 산정 방식 공개를 요구한 이후 산출 체계를 영업이익과 연동했다. 영업이익 10%를 재원으로 활용하는 노사 합의가 이뤄졌고 이후 상한 없는 성과급 지급에도 뜻을 모았다. 성과급은 더 이상 회사가 알아서 주는 돈이 아니라 핵심 인재를 붙잡는 경쟁 수단이 됐다. 삼성전자 직원들이 경쟁사인 SK하이닉스 사례를 비교 대상으로 삼은 배경도 여기에 있다.

이번 삼성전자 노사 합의는 여러 논쟁거리를 남겼다. 인적자원(HR) 업계에선 기업이 낸 성과를 임직원과 나누는 것이 인재 확보·조직 몰입을 위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영업이익의 N%'를 사전 배분하는 구조가 확산하면 투자·배당·연구개발·협력업체 지원 등 다른 이해관계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적자 사업부에 대한 보상 방식도 논란이다. 삼성전자 잠정 합의안은 반도체 사업을 맡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재원의 40%를 부문 전체에, 60%를 사업부별로 배분하고 적자 사업부엔 차등 적용을 1년간 유예했다. 성과주의 원칙과 조직 공동체 논리가 같은 테이블에 오른 것이다.

성과급 받는 회사 6%뿐…하청도 "정당한 보상" 목소리

논쟁은 원청 내부에만 머물지 않는다. 노동계에선 삼성전자 잠정 합의 직후 대기업의 성과가 원청 정규직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청·협력업체 노동자와도 나눠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대로 경영계에선 과도한 성과급 요구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심화시킬 뿐 아니라 협력업체·소부장(소재·부품·장비) 생태계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성과급 논쟁이 대기업 정규직 임금 문제를 넘어 산업 생태계의 성과 배분 문제로 옮겨붙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극히 일부 대기업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임금직업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국내 전체 사업장 중 성과배분제를 도입한 곳은 6.5%뿐이다. 2019년 상반기 6%대로 쪼그라든 이후 박스권에 갇혔다. 규모별로 보면 상용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은 43.8%, 300인 미만 사업장은 6.4%로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전날 "수억원에 달하는 성과급 논쟁 속에서 과연 협력 중소기업들에는 정당한 대가와 보상이 이뤄졌는지 의문이 남는다"고 꼬집었다.

성과급의 역사는 한국 기업 임금체계가 연공에서 성과로, 다시 경영성과 공개·배분으로 이동해온 과정을 보여준다. 삼성전자 잠정 합의안은 경영성과 배분 논쟁에 불을 붙였다. 경영계는 즉각 "이번 합의는 삼성전자의 특수한 상황이 반영된 것인 만큼 노동계가 이를 일반화해 과도한 성과급 요구를 산업 전반으로 확산시켜서는 안 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삼성전자 잠정 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 투표는 이날 오후 2시부터 오는 27일 오전 10시까지 진행된다.

노사관계 전문가들은 향후 노사 교섭의 쟁점이 '기본급 몇 %'를 올릴 것인지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누가 성과를 만들었고 어떤 기준으로 측정하는지, 그 몫을 임직원·주주·협력업체·미래 투자 사이에서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가 한국 기업 보상체계의 핵심 질문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관측이다. 노동계 관계자는 "빠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다른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공공부문도 영업이익 분배 요구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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