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동조합이 22일 가까스로 마련한 임금 및 성과급 잠정 합의안의 조합원 찬반투표에 들어갔다. 성과급 합의안에서 소외된 가전·모바일(DX) 부문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합의안 가결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최승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은 합의안이 부결되면 사퇴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합의안은 반도체(DS) 부문 사업성과의 10.5%를 특별경영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해 자사주로 지급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업계에선 전체 조합원의 약 80%를 차지하는 DS 부문 조합원이 합의안 통과를 주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성과급 합의에서 배제된 DX 부문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조 수원지부와 동행노조는 이날 수원사업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합의안 부결 운동’을 선언했다. DX 부문이 받을 특별경영성과급은 600만원으로, 메모리사업부 직원이 받을 금액(5억7000만원)과 100배 가까이 차이 난다. 투표는 오는 27일 오전 10시까지 이뤄진다.
가전·모바일 노조, 합의안 효력정지 가처분 추진…파운드리도 반발
삼성전자 노조 '사분오열' 속 찬반투표 시작
‘사분오열(四分五裂)’.
삼성전자의 내부 분열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노사가 임금 및 성과급 잠정 합의안을 마련했지만 100배에 가까운 사업부별 보상 격차가 도화선이 됐다. 수억원대 성과급 혜택이 반도체(DS) 부문 메모리사업부에 집중되자 박탈감을 호소하는 가전·모바일(DX) 부문에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DX 노동조합 측은 성과급 합의안 무효화를 위한 가처분 소송 카드까지 꺼내 들 태세다.
◇ 7만 표심 지형도는 찬성 우세
삼성전자 노조 공동투쟁본부가 22일 오후 2시부터 잠정 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를 진행 중인 가운데 오후 6시 기준 투표율은 57.4%에 달했다.
합의안은 올해 사업 성과(영업이익)의 10.5%를 특별경영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해 자사주로 지급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현재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총인원 5만7290명) 기준으로 투표가 진행 중인 점을 감안하면 가결을 위해 2만9000명 이상의 찬성표가 필요하다. 전체 조합원의 약 80%를 차지하는 메모리 및 반도체연구소 등 공통 조직 DS 부문 조합원을 중심으로 합의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문제는 100배 가까운 성과급 격차를 둘러싼 내부 불만이 투표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합의안이 반도체 특별경영성과급 신설에 방점이 찍히며 DX 부문은 사실상 배제됐다. DX 부문 직원의 특별경영성과급 책정액은 600만원에 그친다. 메모리 직원의 1인당 특별성과급(5억7000만원)과 100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DX 부문 노조는 즉각 집단행동에 나섰다. 전삼노 수원지부와 동행노조는 이날 오전 삼성전자 경기 수원사업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초기업노조가 서명한 잠정합의안은 ‘졸속 타결’”이라며 “DX 직원들은 파운드리사업부와 연대해 잠정 합의안 부결 운동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전삼노는 전날 하루 만에 5000여 명이 신규 가입했다. 이호석 전삼노 수원지부장은 이날 한국경제신문 기자와 만나 “절차적 결함에 따른 원천 무효”라고 주장하며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DS 부문 내부의 온도 차도 상당하다. 시스템LSI 및 파운드리 사업부 조합원들은 ‘적자 사업부에 부문 공통 지급률의 60%만 지급한다’는 일종의 페널티 조항을 삭제하라고 요구하는 등 단체행동에 나섰다.
투표 자격을 놓고 노노 간 혼선도 지속됐다. 동행노조는 반대 의사를 표하기 위해 전날 가입자를 1만 명 가까이 늘렸지만, 초기업노조는 즉각 “동행노조는 공동교섭단에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투표권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 주주들 “주총 안 거치면 무효” 반발
주주들도 반발했다. 주주단체인 대한민국주주운동본부는 이날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삼성전자 노사의 특별성과급 합의가 상법을 위반했다”며 “주주총회 승인을 거치지 않을 경우 협약 무효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재원 상한이 없는 특별경영성과급(사업성과의 10.5% 규모) 등은 대법원 판례상 노사 합의 대상인 ‘근로조건’이 아니라 ‘주주 권한’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노동계 일각에선 이번에 체결된 성과급 합의안의 법적 효력 자체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전자 사측과 초기업노조는 ‘임금협약 잠정 합의서’와 ‘성과급 잠정 합의서’를 별개 문서로 체결했다. 최승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은 임단협 합의서엔 ‘삼성전자노조 공동교섭단 대표교섭위원’ 자격으로 서명했으나, 성과급 합의서에는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위원장’ 자격으로 서명했다. 노동계에선 초기업노조가 전삼노, 동행노조 등 다른 노조의 고유한 교섭 권한을 침해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고 보고 있다.
◇ 사회 전반 ‘반도체 블루’ 호소
삼성전자 내부의 진흙탕 싸움은 노동시장 전체의 일그러진 단면을 드러내며 심각한 사회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SK하이닉스에 이어 삼성전자까지 수억원대 ‘로또 성과급’ 제도를 공식화하자 이른바 ‘반도체 블루(우울증)’를 호소하는 타 업종 근로자가 급증하고 있어서다.
제조업체의 한 직원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동일하게 밤을 새우고 치열하게 경쟁하며 사는데, 내가 속한 산업의 업황에 따라 자산 격차가 순식간에 수억원씩 벌어지는 구조 때문에 근로 의욕 자체가 완전히 꺾인다”고 토로했다. 다른 대형 자동차 기업 직원 역시 “고작 2000만원 안팎의 성과급 지급에도 ‘국민 정서’와 ‘하청업체 눈높이’를 운운하며 노조를 압박하던 회사의 모습이 우스워 보일 지경”이라며 씁쓸함을 표했다.
김기승 부산대 경제학과 교수는 “성과주의라는 미명하에 도입된 파격적 보상책이 기업 내부의 결속력을 와해시키고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말했다.
김채연/수원=원종환/곽용희 기자 why2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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