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가로채기 '슬전생 빌런' 명은원 처벌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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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가로채기 '슬전생 빌런' 명은원 처벌하려면…

종로 율제병원 산부인과 펠로우 명은원은 레지던트 구도원과 함께 쓴 논문으로 상을 받는다. 그 전에 명은원은 구도원이 착안하여 연구하고 있는 논문소재가 참신하고 주목을 받을만한 것을 알고, 구도원에게 접근하여 공동으로 논문을 작성하면 공동 제1저자로 올려주겠다고 약속하였으나, 이후 구도원을 제2저자로 바꿔 성과를 사실상 독차지한다. 실질적으로는 구도원이 거의 대부분 기여하였으나, 기여도에서 차이가 난다는 뻔뻔한 코멘트와 함께 공을 가로챈 것이다. 명은원은 자기 발이 저렸던 것인지, 시상식이 끝난 뒤 상금을 구도원에게 건네며 "내가 논문 가로챘다고 오해하는 거 아니지? 나중에 교수님들 앞에서 이상한 소리 나오면 우리 둘 다 민망하잖아"라며 입막음을 시도한다. 특히 많은 젊은 직장인들의 분노를 유발하고 있는 ‘언젠가는 슬기로운 전공의 생활’의 한 장면이다.

과거에는 조직 내에서 그럴 수 있다고 여겨지거나 선배 뒷담화 한번 하고 잊을 만한 일들이 많이 문제가 되고 있다. 율제병원 명은원의 성과 가로채기가 그 대표적인 예이고, 이제 직장 이야기를 다룬 각종 영화나 드라마에서 성과 가로채기는 빌런이 갖추어야 할 필수 덕목이 된지 오래다. 실제 2024년 한 설문조사에서 Z세대가 뽑은 최악의 사수 1위는 ‘성과 가로채는 사수’(44%)로, 2위인 ‘막말, 갑질하는 사수’(18%)의 2배가 넘는다. 조금 의역하면 성과 가로채는 사수보다 차라리 막말하는 사수가 낫다는 것이다. 율제병원 이야기에서도 명은원이 실수한 후배 레지던트를 대차게 까는 장면보다 논문을 가로채는 부분에서 감정이입이 더 되고 분노게이지도 더 올라간다는 반응이다.

또한 설문조사에서 Z세대는 ‘성격 나쁘지만 배울 게 많은 사수’(58%)가 ‘성격 좋지만 배울 게 없는 사수’(42%)보다 더 좋다고 한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매우 강하고, 조직생활에서 개인의 성장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세대들의 특징을 보여주는 결과일 것이고, 많은 직장 상사들이 이러한 결과에 공감할 것이다.

율제병원으로 돌아가보면, 명은원이 논문을 가로채고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할까. 꽁꽁 숨기고 절대 밝혀지지 않는다면 그럴 수 있는데, 요즘 빌런들의 행동은 금방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명은원의 행동은 동료 및 직장을 기망한 행동으로 징계사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징계를 하려면 취업규칙 등에 규정된 징계사유에 포섭될 수 있어야 하는데, 왠만한 회사의 취업규칙에는 이런 부도덕한 행동으로 주위에 유무형의 피해를 주는 행동을 규율할 만한 징계사유를 규정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의사들에게 전문분야 논문은 교수임용이나 처우, 보직 등을 판단하는 데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되기 때문에 그 진실성을 해치는 부정행위는 무거운 사유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동일하다고 보기 어려우나 판례는 “국책연구기관이 연구원의 채용조건으로 해당 분야의 박사학위 소지자일 것을 요구하고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하도록 하는 것은 단순히 학위 소지를 증명하는 데 그치지 아니하고 해당 분야의 연구능력 및 전문지식과 함께 연구원으로서의 진정성과 정직성, 연구 환경에 대한 적응성 등을 판단하기 위한 자료를 확보하고, 나아가 상호 간 신뢰관계의 형성과 안정적인 연구 환경의 유지 등을 도모하고자 하는 데에도 목적이 있는 것으로서, 이는 고용계약의 체결 뿐 아니라 고용관계의 유지에서도 중요한 고려요소가 된다”고 하면서 논문표절행위가 해고사유가 된다고 보았다(대법원 2016. 10. 27. 선고 2015다5170 판결). 이를 고려하면 명은원의 경우에도 징계절차에 이른다면 중징계가 불가피해 보이고 해고에 이를 수도 있다.

또한 명은원의 논문 가로채기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고, 직장 내 괴롭힘으로 확인되면 사용자는 징계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우선 펠로우인 명은원과 레지던트 구도원 사이에 지위의 우위가 있다는 점은 비교적 명확해 보이고, 구도원은 겉으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자신의 아이디어와 노력이 사실상 도둑질 당한 것에 정신적 고통을 받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오죽하면 곁에 있던 오이영이 명은원에게 사과하라고 할 정도이다).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었는지가 문제인데, 동료들 사이에 논문 내용에 대하여 도움을 줄 수는 있겠으나 명은원은 처음부터 구도원의 논문소재를 자기 것으로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이는 점, 그 방법으로 공동저자로 하겠다고 기망한 점에 비추어 사회통념상 용인되기 어려운 정도에 이르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었다고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편, 선배와 후배가 협업하여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은 직장 생활에서 자연스러운 일이고, 어느 정도의 위계질서가 있고, 선후배간 역할분담이 있는 조직에서 후배가 아이디어를 내거나 초안을 만든 것이 선배의 손을 거쳐 완성되는 것은 정상적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선배가 후배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러한 것을 모두 성과 가로채기라고 볼 수는 없다. 선배와 후배에게 주어진 역할이 다르고, 처음의 아이디어나 초안이 선배의 역할을 거쳐 비로소 빛을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며, 그러한 역할에도 당연히 가치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직장 내에서 성과 가로채기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원조 논란이나 기여분 논란이 벌어지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진정으로 남의 노력와 아이디어를 가져간 것인지, 성과에 대하여 자신의 기여를 과대평가하면서 타인의 기여를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잘 따져볼 필요가 있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인사노무그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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