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운동회가 시작되기 전 학교에 아이들이 모여 ‘사과’로 시작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학교 측이 운동회 당일 마이크를 잡고 주민들에게 “죄송합니다”라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다.
과거 학생과 학부모, 지역 주민 모두가 어우러졌던 운동회는 이제 소음 민원과 항의 속에서 조용한 행사로 바뀌고 있다.
이는 교육과 부동산이 얽힌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 시대의 민낯이다.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최근 몇 년 사이이른바 ‘초품아’는 부동산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며 집값 상승의 주요 요소로 작용했다. 이로 인해 학교는일상 활동마저 제약을 받는 일이 잦아졌다.
운동회, 체육대회, 방과 후 활동 등 야외 행사가 열릴 때마다 학교는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을 의식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일부 학교는 행사 시작 전 스피커를 통해 “행사 소음으로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안내를 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학부모들은 “학교가 왜 사과를 해야 하느냐”고 말한다. 서울 양천구의 한 초등학교 학부모는 “1년에 한두 번 있는 행사인데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학교 측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한 초등학교 교감은 “주민 민원이 반복되면 교육청에서도 조심하라는 지침이 내려온다”며 “아이들보다 민원인의 눈치를 먼저 보게 되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학교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 회복을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 강서구의 한 초등학교는 인근 주민들을 운동회나 학교 축제에 초청하고, 사전 안내문을 통해 협조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학교 관계자는 “이해를 구하기보다 함께 즐기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었다”며 “지역 주민들의 호응도 꽤 좋았다”고 전했다.
‘초품아’는 교육 여건을 고려한 주거 선택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학교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동산 가치와 소음 문제 이전에, 학교가 어떤 공간이어야 하는지를 되묻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교육 전문가는 “학교는 교육뿐 아니라 사회성을 키우고 공동체의식을 경험하는 공간”이라며 “단기적인 불편보다 장기적인 사회적 가치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