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 카네기홀 첫 초청공연… ‘서울의 울림’ 뉴욕에 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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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필 전 지휘자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이끌고 무대 올라
정재일 신작 ‘인페르노’ 美 초연… 김봄소리 섬세한 협연
츠베덴이 새로 색 입힌 서울시향의 새로운 서막

  • 등록 2025-10-28 오후 10:48:26

    수정 2025-10-28 오후 11:04:54

[뉴욕=이데일리 김상윤 특파원] 27일(현시시간) 가을의 마지막 숨결이 감도는 뉴욕. 세계 음악의 심장이라 불리는 카네기홀 페렐만 스테이지 위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이 드디어 그 이름을 새겼다.

얍 판 츠베덴의 지휘봉 아래 서울시향은 정재일의 신작 ‘인페르노’ 김봄소리의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그리고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제2번으로 뉴욕의 밤을 수놓았다.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가운데) (사진=서울시향)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태어난 불의 음악

공연의 문을 연 작품은 작곡가 정재일의 ‘인페르노’.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모티프로 삼아, 현대 도시의 불안과 인간 내면의 긴장을 음악으로 풀어냈다.

강렬한 금관의 울림으로 문이 열리고, 타악기의 리듬이 도시의 심장을 두드리듯 고동치며 서사를 쌓아 올렸다. 순간적으로 찾아오는 정적과 폭발적인 사운드의 대조는 청중을 긴장과 몰입의 경계로 이끌었다.

정재일은 글로벌 사운드 디자이너 존 랭글리와의 협업으로 이 곡에 영화적 감각을 더했다. 그의 음악은 오케스트라의 전통적 질감 위에 현대 사회의 불안과 존재의식을 섬세하게 포개며 새로운 미학을 제시했다.

이날 무대는 단순한 초연이 아니라, 한국 창작음악이 세계 클래식 중심 무대에 발을 내딛은 순간이었다.

작곡가 정재일이 ‘인페르노’ 공연이 끝난 후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과 감사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서울시향)

김봄소리의 멘델스존, 절제된 열정의 미학

이어진 무대에서 김봄소리는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Op.64를 통해 서정과 절제의 극치를 선보였다.

서주부의 첫 음이 공기를 가르는 순간, 홀 전체는 숨을 죽였다. 김봄소리의 음색은 마치 유리처럼 투명했으나 그 속에는 불꽃처럼 맺힌 열정이 있었다.

츠베덴 음악감독(지휘자)는 섬세한 손짓으로 오케스트라의 숨결을 단단히 잡으며, 솔리스트의 감정을 세밀하게 뒷받침했다. 정제된 긴장감, 완벽한 호흡, 그리고 마지막 악장의 경쾌한 도약은 “완벽히 준비된 음악적 대화”라는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다.

후반부의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제2번은 서울시향의 진면목을 드러낸 무대였다. 서울시향은 풍부한 현악과 균형 잡힌 금관의 조화를 선보이며 낭만주의의 정수를 구현했다. 짙은 현악의 울림이 감정을 밀어올리고, 클라리넷의 서정적인 선율이 청중의 마음을 흔들었다. 특히 3악장의 느린 악장에서 흐르는 선율은 러시아 낭만주의의 감성과 한국 오케스트라의 정제된 감수성이 자연스럽게 만났다. 뉴욕의 청중에게 ‘서울의 감성’을 전하는 듯했다.

김봄소리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Op.64를 서울시향과 함께 연주하고 있다. (사진=서울시향)
◇츠베덴의 서울시향의 새로운 서막

뉴욕필하모닉 전 음악감독으로서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던 츠베덴 음악감독은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감정적 과잉을 절제된 구조감 속에서 녹여냈다. 폭발보다는 내면의 떨림, 거대한 사운드 속에서도 단 한 음의 진정성을 놓치지 않는 해석이었다. 서울시향에 부임한 뒤 섬세한 구조감과 엄격한 앙상블 중심의 리허설 문화를 도입하며 단원들의 사운드와 해석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츠베덴 음악감독은 이날 연주를 앞두고 “서울시향의 카네기홀 초청은 교향악단 역사에 있어 중요한 이정표”라며 “제 첫 바이올린 스승이 한국의 강효 선생님이었기에,이번 무대는 제게도 개인적으로 매우 특별한 순간이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의 말처럼 이날 무대는 단순한 해외 공연이 아니라, 서울시향이 세계 클래식 중심 무대에서 자신만의 언어로 노래한 밤이었다. 츠베덴의 리더십 아래 서울시향은 ‘거대한 사운드보다 밀도 있는 울림’을 지향하며 동양적 절제와 서구적 정교함이 공존하는 새로운 색깔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날 카네기홀의 무대는 그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자리였다. 공연이 끝난 뒤, 뉴욕의 청중은 기립했다. 박수는 길게 이어졌고, 서울시향은 그 순간, 한국 교향악의 오늘을 세계에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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