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출신 김의성 "기득권 연기, 날로 먹을 수 있을 듯"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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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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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때문에 고통받는 분들도 너무 많고, 빨리 비는 내려야 할 것 같고 정치적인 상황도 빨리 해결되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로비' 개봉을 앞두고 만난 배우 김의성이 탄핵 정국을 염두하고 이같이 말했다. "한가하게 영화 보실 상황이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또 야구장은 잘 가시더라고요. (하하) 극장에 갈 마음이 잘 안 드실 것 같긴 합니다. 불투명한 상황들이 정리되고 스트레스 지수도 낮아지면 전반적으로 극장에 찾으실만한 마음의 여유가 생기시지 않을까요. 이렇게 힘든 시기일수록 즐거운 영화 보면서 웃음을 찾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로비'는 연구밖에 모르던 스타트업 대표 창욱(하정우)이 4조 원의 국책사업을 따내기 위해 인생 첫 로비 골프를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김의성은 이 영화에서 청렴하다고 소문나고 있지만 잘 나가는 골프 선수 진프로(강해림)의 열렬한 팬이자 부패 비리에 찌들어 있는 조 장관(강말금)의 남편 최실장 역을 연기했다.

골프라는 스포츠 특성상 골프장 내에서 다양한 비즈니스가 오가는 것에 착안해 골프 로비의 실체를 블랙 코미디적 감각으로 뽑았다. 배우 겸 감독 하정우가 구상한 대사들의 티키타카와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들의 향연이 웃음을 유발한다. 언론시사회까지 두 번 작품을 봤다는 김의성은 이 영화를 "이상하고 재미있다"라고 표현했다.

"처음 볼 때는 '재미있나, 재미없나'와 같은 조바심이 나더라고요. 영화를 잘 만들어야 하는 데 걱정하며 분석하며 봤습니다. 두 번째는 쭉 흘러가며 봤는데 의외로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과연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걸 굉장히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죠. 좌충우돌하지만 흘러가는 길이 정확한 작품입니다. 피식피식, 깔깔대며 웃다가 남는 것이 있다면 '이 영화 괜찮네' 싶지 않나요."

/사진=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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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김의성은 이른바 '개저씨'라 불릴 정도로 비호감이었다. 팬심을 숨기지 못하고 20대 여성 골퍼에게 죽자 살자 들이대며 폭주하기 때문이다. 그는 "캐릭터가 납득이 안 되면 맡을 수 없어서 이 사람을 좋아하려고 애썼다"면서도 "결과를 보니까 너무 더럽고, 예상보다 더 비호감이었다"며 "하 감독은 그걸 예상했을 수 있겠지만 나는 작은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해 웃음을 자아냈다.

"인간 김의성으로서는 제가 맡는 어떤 역할이 제 또래, 가까운 남성 그룹, 동지들에게 반면교사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을 것 같아요. 연기의 포인트는 멋있게 보이려고 애썼다는 것입니다. 일상에 살면서 멋있게 보이려고 하다가 '저렇게 보이게 되는 거 아닌가?'하며 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어요. 이 캐릭터를 통해 사회 전체에 끼치는 해악을 줄일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한편 한국 영화계가 극심한 부진을 겪고 있는 가운데 김의성 또한 이를 실감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배우로서 참여는 했는데 (흥행)해낸 부분이 없어서"라며 "전반적으로 상황이 좋지 않으니 흥행에 대한 걱정은 당연하다"고 털어놨다. 이어 "지금 '승부'가 개봉하지 않았나. 저희 영화도 많이 봐주셔서 '로비'로 '승부'가 되는 그런 시추에이션이 벌어졌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그는 극장의 역할과 개선 방향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저 혼자 막 드는 생각은 극장의 변화가 좀 필요한 것 같아요. 사람들이 극장에 가는 것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있는 시기죠. OTT라든지 외부적 요인도 있지만, 한국 극장의 내부적 문제들, 그간 쌓였던 영향들이 있는 것 같아요. 멀티플렉스에서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보러 갔는데, 텐트폴 작품 하나만 상영하고 있다면 관객에겐 배신일 수 있겠죠. 극장이 어떻게 하면 관객에 더 다양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해봐야 하고 멀티플렉스의 개혁이 꼭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김의성은 2023년 소속사 안컴퍼니를 설립한 '대표님'이기도 하다. 안컴퍼니에는 연기파 배우 김기천, 이주영 등이 소속돼 있다. 그는 "매니지먼트도 어려운 상황이다. 더 큰 회사도 흔들리고 있다"며 "이 산업은 당분간 힘든 시기를 겪어야 할 것 같다"고 언급했다.

"일의 양 자체가 엄청나게 줄어들었습니다. 모든 배우들이 영향을 받고 있고, 배우들이 모여든 회사는 더 그런 상황이에요. 버티는 힘, 위기를 이용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럴 때 무언가 재미있는 일을 만들고, 유의미한 작업을 선두에 서서 할 수 있는 창의력 있는 회사가 된다면 시장이 전반적으로 좋아질 때 좋은 흐름을 탈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능력 있고 훌륭한 배우도 더 영입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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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61세인 김의성은 "언젠가 직업으로 배우는 그만하고 싶다"고 답했다. 그는 "지금은 연기가 좋아서 하는 것도 있지만 생계를 위해 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이 먹으며 씀씀이도 줄이고 해서 그야말로 재미, 작품의 일원으로서 만들어 내는 재미만 가지고 살 수 있으면 굉장히 이상적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러면서 "직업인으로서보다 유사 예술인이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악역으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선보이고 있는 김의성은 앞으로 해 보고 싶은 배역에 대해 '법조인'을 꼽았다. "최근 몇 년간 정치 사회적 흐름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요. 너무 앞서간 '더킹'이란 영화처럼요. 그런 영화나 드라마들이 진지하게 쏟아질 때가 있는데 그때 법조계 인물을 하고 싶어요. 정의로운 쪽은 안 시켜줄 것 같고 악역을 하지 않을까요."

김의성은 악역을 염두에 두는 이유에 대해 "그런 사람들 마음을 잘 이해할 것 같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제 또래의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표현하는 건 날로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어떤 배역이든 열심히 잘 해내야겠지만 말이다"라며 허허 웃었다.

탄핵 정국으로 사회 혼란이 장기화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김의성은 자신의 대학 시절을 떠올렸다. 그는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84학번이다.

"대학교 1학년 때 제 주변엔 학생반 정도가 운동권이었어요. 학교에 가면 다 뜻이 비슷한 상태였죠. 지금 이름만 대면 알만한 이상한 사람 중에 친구도 있었어요. 그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하겠다고 결심을 한 게 아니에요. 작은 선택이 쌓이면서 길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저도 만약에 그때 사법고시 같은 걸 보고 합격해서 그 길을 갔다면 제가 되게 싫어하는 사람처럼 됐을 가능성이 꽤 높다고 생각해요. 얼마든지 제 안에서 합리화하고, 따라갈 수 있어요. 잘 살기 위해서는 그래서 경계해야 하죠."

마지막으로 김의성은 영화 '로비'가 관객에게 "재밌게 보고 났더니 작은 게 남더라. 그 힘들 때 천만을 했네"하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며 '행복회로'를 돌렸다.

"모든 영화는 특별합니다. 특히 이 영화는 출연할 기회가 없을 때라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옷 피팅하고 감독 만나는 것부터 시작해 끝인 홍보까지 영화 전 과정에서 홍보가 제일 재미없어요. 이 재미없는 과정도 소중하고 감사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로비'는 저에게도 가뭄의 단비 같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영화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영화 '로비'는 오는 4월 2일 개봉한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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