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첫 한국인 장관, 유흥식 추기경 방한 간담회
‘돈독한 관계 희망’ 내용 담아
후보 시절·취임 후 편지 전달
2027년 서울서 세계청년대회
북한 참가할 수 있게 노력할 것
새 추기경 한국서 탄생 가능성
정치인 ‘사랑의 리더십’ 펼치길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진취적이랄까 도전하는 면모가 강하셨고요. 레오 14세, 새 교황님은 조용히 경청하는 스타일입니다. 미국인이라는 생각보다 페루의 가난한 지역에서 20여 년간 선교를 했다는 점을 추기경단이 높이 평가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5월 7일 바티칸에서 열린 새 교황 선출 투표인 ‘콘클라베’에 한국인으로서 유일하게 참여한 유흥식 나자로 추기경(74·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의 말이다. 여름휴가를 맞아 고국을 찾은 유 추기경은 3일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강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새 교황과 한국 간 관계, 2027년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청년대회와 관련한 바티칸의 생생한 분위기를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웃는 추기경’이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새 교황과도 아주 가까운 사이다. 레오 14세는 교황 선출 전 주교부 장관직을 맡고 있었는데, 성직자부 장관을 맡은 유 추기경과 회의를 자주 하고 업무적으로도 긴밀히 소통했다. 그는 “교황님 선출 전에 같은 아파트 3·4층에서 지냈다”며 “층간소음을 걱정하니 ‘신경 쓰지 말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이번에 직접 경험한 콘클라베에 대해선 “영화와 달리 굉장히 재밌고 웃음도 많은 성령이 이끄는 거룩한 축제였다”고 말했다.
유 추기경은 2021년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바티칸 장관직을 맡았다. 그것도 전 세계 사제와 신학생, 예비 신학생의 양성과 징계를 맡은 핵심 보직이다. 임기는 내년까지이며, 5년간이다. 멀게만 느껴졌던 한국과 바티칸의 거리를 좁히는 데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과 취임 후 레오 14세 교황에게 보낸 두 번의 서신을 모두 제가 전달했다”며 “교황청과 한국, 특히 새 정부와 돈독한 관계를 이어 가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밝혔다. 그는 이 대통령의 연내 바티칸 방문도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교황님이 선출되던 순간에 ‘아, 이분이 미국분이기 때문에 북·미 관계 등에서 어떤 역할을 하시겠구나’라는 생각이 마음속으로 지나갔어요. 한반도 문제와 북·미 관계 개선에 분명 중요한 역할을 하실 겁니다.”
교황이 방문하는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 계기가 될 수 있다.
“세계청년대회는 가톨릭 행사 중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행사입니다. 교황님이 관심이 없을 수가 없어요. 한국에 오기 전 교황님을 뵙고 한국 천주교의 순교 정신을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K팝과 인공지능(AI)의 강점도 전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어요.” 북한 청년들을 초청하는 문제에 대해선 “요란하지 않은 방식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새 추기경 탄생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올해 말께 적당한 때에 새로운 추기경을 임명하실 것”이라며 한국인 추기경의 추가 배출 가능성을 시사했다.
성직자부 장관으로서의 소명을 묻자 “신부들이 한 명이라도 슬프면 제 책임”이라며 “행복한 사제들이 젊은이를 교회로 이끈다는 교황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있다”고 밝혔다.
‘웃는 추기경’ ‘명랑 주교’의 눈으로 보기에 대한민국은 행복하지 않다.
“왜 우리는 행복해할 줄 모를까요. 외국에서는 대한민국이 최고라고 하는데…. 마음을 열고 서로 신뢰할 때 행복이 찾아옵니다.”
정치인에게는 ‘사랑을 베푸는 리더십’을 촉구했다. “지도층에서 좀 더 모범을 보였으면 좋겠어요.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자가 내 손주까지 먹을거리를 장만하는 게 아니라 사회에 봉사할 때가 됐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도록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