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주가는 연일 불기둥이 치솟는데, 세계적이라는 K콘텐츠를 만드는 엔터주는 잠잠하다. 주식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활기를 띠고 있지만,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에 대한 관심은 저조한 실정이다. "코스피는 역대급 호황, 엔터는 역대급 불황"이라는 자조 섞인 반응이 나올 정도다. 심지어 "SK하이닉스 직원의 성과급이 엔터 공룡이라 불리는 A사 영업이익보다 많다"는 말까지 들린다.
지난 3월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3년9개월 만에 완전체로 돌아왔다. 정규 5집 '아리랑'은 초동(발매 첫 주) 판매량 416만장을 돌파하며 K팝 역사를 새로 썼다. 타이틀곡 '스윔(SWIM)'은 빌보드 핫100 1위를 차지했고, 전 세계 23개국 34개 도시를 도는 월드투어는 K팝 역대 최대 규모다. 85회 공연, 507만명 관객. 숫자만 보면 엔터 업종 슈퍼 사이클이 시작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소속사 하이브의 주가는 잠잠하다. 올해 들어 최고가(40만4500원) 대비 40% 가까이 빠졌다. 하이브와 함께 국내 엔터 산업의 양대 산맥이라고 불리는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는 52주 신저가(8만3000원)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콘텐츠는 팔리는데 주가는 내리막길
키움증권에 따르면 하이브의 1분기 매출은 698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9.5% 증가했다. 에스엠의 1분기 영업이익은 386억원으로 시장 컨센서스를 웃돌았다. 외형 성장 자체는 흠잡을 데가 없다. 그러나 주가는 실적 발표 직후에도 꿈쩍 않았다. 지인해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엔터 업종 평균 멀티플은 과거 20~30배 수준이었으나, 현재는 15~25배로 하향돼 거래 중"이라고 했다.
K콘텐츠의 글로벌 경쟁력이 입증됐고, K팝 아티스트들의 활약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주가가 하락하는 배경에는 반도체와 AI 등 특정 사업군으로만 자금이 쏠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 10배 미만 반도체주가 폭발적 이익 성장을 보여주는 마당에, PER 15~25배를 요구하는 엔터주에 굳이 손을 댈 이유가 없다.
여기에 마땅한 호재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한한령(限韓令) 해제 기대는 이미 수차례 반짝 호재로 소비됐다. 시진핑 방한설, APEC 한·중 정상회담, 중국 베이징 K팝 콘서트 추진 등 모멘텀이 뜰 때마다 엔터주는 잠깐 반등했다가 원위치를 반복했다. 시장은 '기대 소멸'에 학습효과가 생겼다.
화려한 엔터 산업, 뚜껑 까보니 "씁쓸"
CJ ENM은 1분기 영업이익 15억원으로 시장 컨센서스 249억원을 94% 하회해 충격을 줬다. 메리츠증권은 CJ ENM의 미디어플랫폼 부문이 212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고 분석했다.
하이브의 1분기 영업손실은 1966억원으로 기록됐다. 물론 최대주주의 임직원 보상용 주식 증여와 관련한 일회성 회계비용 2550억원이 반영된 결과다. 실제 현금 유출이 없는 비용이었고, 조정 영업이익은 585억원(OPM 8.4%)으로 선방했다. 하지만 '조정' 영업이익이라는 단어가 계속 등장한다는 것 자체가 불안감을 자극한다.
반면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을 내면서 직원 1인당 성과급으로 수천만원을 지급했고, 올해 역시 역대 최대 규모의 성과급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엔터주가 반도체 종목에 비해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방탄소년단의 월드투어가 본격화되는 2분기부터 하이브의 실적이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흘러나오고 있다.
신한투자증권은 하이브의 2026년 연간 매출이 4조6821억원에 달할 것이며 전년 대비 76.7%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연 매출만 1조7693억원에 달하며, MD·IP 라이선싱은 1조2562억원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이중 방탄소년단 월드투어로만 총 관객 507만명, 티켓 매출 추정액 1조2750억원(평균 티켓가 25만원 기준)이 기대된다. 여기에 굿즈 매출 6630억원을 더하면 콘서트 관련 매출만 2조원 수준이다.
임수진 키움증권 연구원은 "방탄소년단 투어 수익성이 테일러 스위프트의 '에라스 투어' 대비 49% 높다"고 분석했다. 360도 개방형 무대와 팬클럽 기반 굿즈 판매 시스템 덕분이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인당 MD 소비액이 약 5만5000원인 데 비해, 방탄소년단은 약 15만원으로 세 배 가까이 높다. 숫자만 보면 K팝 투어가 팝 투어보다 훨씬 알짜라는 얘기다.
하지만 여전히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단기적인 흥행 이벤트 하나만으로 구조적인 수익성 둔화 우려를 씻어내기엔 역부족이라는 냉정한 판단이 깔려 있다.
방탄소년단의 컴백 소식이 알려졌을 때, 하이브 주가는 작년 11월 38만원까지 올랐다. 그러나 이후 '실적 공백기'에 대한 불안, 슈퍼 IP 레버리지 무력화 우려 등이 겹치면서 주가는 도로 24만원대까지 밀렸다. 신한투자증권은 "방탄소년단의 이익 비중 확대에 따른 원가 부담, 매출과 비용의 불균형"이 시장이 우려했던 핵심 리스크였다고 짚었다.
CJ ENM의 상황은 더 복잡하다. 메리츠증권은 CJ ENM의 1분기 영업이익이 시장 컨센서스 대비 94.1% 하회했다고 분석했다. TV 광고 매출이 전년 대비 20.7% 역성장하고, 티빙(TVING)은 가입자가 늘어도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 증가로 영업적자가 확대됐다. 음악 부문에서는 Mnet '보이즈2플래닛'으로 출범한 그룹 알파드라이브원이 초동 144만장을 기록했지만, 대형 콘서트 부재로 영업적자를 냈다. 커머스 부문만 모바일 라이브 커머스 고성장으로 이익을 지탱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엔터 업종 '실적의 불균질성'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방탄소년단 한 팀에 매출 절반 이상이 쏠리는 하이브, 고연차 IP 성장 둔화에 발목 잡힌 에스엠, 콘텐츠 투자와 수익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CJ ENM, 모두 성장 내러티브는 있지만 '지속 가능성'에 대한 물음표가 제기되고 있다는 것. 다올투자증권은 "엔터 업종의 실적과 멀티플 사이의 괴리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실적이 개선돼도 반도체·AI 섹터 대비 매력이 떨어지는 한, 멀티플 재평가는 쉽지 않다는 의미다.
엔터주, 붐은 올까
엔터주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는 일회성 흥행 호재나 막연한 K팝 프리미엄을 넘어,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수익 모델을 증명해야만 한다. 신한투자증권은 하이브의 실적발표를 분석하며 엔터 투자전략의 새 판 짜기를 주문했고, 키움증권은 하이브를 향해 "차원이 다른 중장기 성장 시나리오"를 시장에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경 투자정보 AI 플랫폼인 '에픽AI 코파일럿'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현재 엔터주의 부진은 K팝 산업 자체의 펀더멘털 훼손보다는, 시장 수급 환경의 변화와 투자자들의 성장 내러티브 요구 수준 상승에 기인한 구조적 현상으로 해석된다"며 국내 증권사들 역시 '(투자) 비중확대' 의견을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에픽AI 코파일럿은 투자자가 일일이 찾기 어려운 정부의 수출 자료, 증권사의 분석 보고서, 투자업계의 방대한 금융 데이터, 실시간 뉴스 등을 기반으로 투자 정보를 제공해준다.
에픽AI 코파일럿은 "엔터주의 밸류에이션 재평가(리레이팅)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단순 공연·앨범 매출 성장을 넘어선 새로운 수익 모델의 가시화가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분석된다"며 "글로벌 레이블화, IP 기반 콘텐츠 수익화, 플랫폼 연계 사업 모델 등이 구체적인 실적으로 연결되는 시점이 주가 반등의 핵심 트리거가 될 수 있다"고 관측했다.
그러면서 "투자자들은 단기적인 주가 흐름보다는 각 기업이 제시하는 중장기 성장 전략의 실행력과 글로벌 시장 내 경쟁력 확보 여부를 면밀히 모니터링하는 것이 중요한 관찰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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