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러스 포인트>
▶반도체 업황 피크아웃과 주식 속도 둔화를 구분해서 판단해야
▶자본집약적이고 가격 변동성 큰 메모리, 빅테크 AI인프라 투자로 꺾이긴 힘들어
▶단기 수급 공포를 장기 산업의 결론으로 착각하면 실수 할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 한국 증시를 두고 던진 경고는 제법 매서웠다. 지난 1년간 165% 오른 세계 최고 수익률의 시장이 자칫 ‘오징어 게임’처럼 끝날 수 있다는 것이다. 화려한 상승 뒤에서 외국인이 먼저 빠져나가고, 마지막까지 판에 남은 개인이 손실을 떠안는 구조. 이 신문은 그 광경을 카지노에 비유했다.
숫자를 보면 과장만은 아니다. 올 상반기 코스피에서 변동성완화장치(VI)는 2만9357회 발동돼 반기 기준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개인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에 1조6100억원을 순매수했다. 반면 외국인은 상반기에만 1000억달러, 약 153조원어치를 팔았다. 그리고 7월 8일, 코스피는 6월 22일 고점(9114) 대비 20% 넘게 밀리며 기술적 약세장에 들어섰다. 반도체 랠리, 레버리지 ETF, 외국인 리밸런싱(재조정)이 한꺼번에 맞물린 결과였다.
이 국면에서 가장 걱정되는 것은 두 개의 피크아웃이 하나로 뭉뚱그려지는 일이다. 업황의 피크아웃은 수요와 가격, 이익의 방향이 꺾이는 문제이고, 주가의 피크아웃은 이미 오른 주식에서 기대의 ‘속도’가 둔화되는 문제다. 지금 시장의 공포는 이 둘을 한꺼번에 섞은 데서 부풀었다. 목대균 KCGI자산운용 대표와의 일문일답을 통해 향후 증시 대응법을 알아봤다.
- 실적이 좋은데 삼전닉스(삼성전자·SK하이닉스) 주가는 왜 떨어지나
실적만 보면 반도체 기업은 여전히 강하다. 마이크론은 5월 말로 끝난 분기에 414억달러의 사상 최대 매출을 냈고, 삼성전자의 2분기 영업이익은 89조원으로 1년 전의 열아홉 배, 세계 시총 1위 엔비디아의 분기 실적마저 넘어섰다. 그런데도 주가는 발표 당일 급락했다. 매출이 기대에 살짝 못 미친 탓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투자자들이 곧바로 던진 다음 질문이었다. “이보다 더 좋아질 수 있는가.”
주식시장은 오늘의 이익보다 내일의 변화율을 먼저 본다. 이 논리를 가장 날카롭게 벼려 든 곳이 모건스탠리다. 이 회사는 7월 초 보고서에서 D램 가격 상승률 둔화, 재고 개선 정체, 이익 전망 상향 폭의 정점을 들어 ‘변화율의 정점(peak rate of change)’이 왔다고 진단했다. 2024년 ‘겨울이 온다(Winter is coming)’ 보고서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를 끌어내려 ‘반도체 저승사자’로 불린 곳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시장이 왜 예민하게 반응했는지 짐작이 간다. 다만 같은 보고서도 내년 이익이 35~40% 늘어난다는 장기 낙관까지 거두지는 않았다.
메모리 피크아웃 우려 자체는 가볍게 볼 게 아니다. 자본집약적이고 가격 변동성이 큰 산업이라 공급이 조금만 넘쳐도 가격은 빠르게 무너진다. 과거 PC·스마트폰 사이클이 그랬다. 고객이 주문을 줄이고 재고가 쌓이면 실적은 순식간에 꺾였다. 그래서 투자자들은 최고 실적이 발표되는 날부터 다음 하락을 의심하는 습성이 몸에 배어 있다.
- 메모리 반도체 팔아야 하나. 매매 판단에 참고할 지표는 무엇인가
메타가 남는 AI 컴퓨팅 자원을 외부에 파는 클라우드 사업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정작 메타 주가는 8% 넘게 올랐다. 시장은 그 소식을 막대한 투자를 수익으로 바꾸는 신호로 읽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일부가 이를 “AI 인프라가 남아돌기 시작했다”고 확대 해석했고, 그 불안이 메모리·반도체 전반으로 옮겨붙었다. 뒤집어 보면 데이터센터 가동률을 높이려는 시도이자, 임대할 만큼 수요가 있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결국 판가름할 것은 보도의 제목이 아니다. 곧 이어질 실적 시즌(실적발표 기간)에서 드러날 빅테크의 자본지출 가이던스다.
- D램 가격과 관련주 수급은 어떤가
가격 지표도 아직 붕괴를 말하지 않는다. 트렌드포스는 3분기 범용 D램 계약가가 전 분기 대비 13~18% 오를 것으로 본다. 1분기 55~60%, 2분기 45~60%에서 내려온 숫자지만, 상승률 둔화와 가격 하락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60% 오르던 값이 15% 오른다고 시장이 곧장 침체에 빠지는 건 아니다. PC·스마트폰 업체는 이미 높은 메모리 값에 부담을 느끼는데, AI 서버 수요는 여전히 단단하다. 범용 소비재 메모리와 AI 인프라 메모리, 두 시장이 갈라지는 구간이다.
최근 급락에는 업황보다 수급의 지문이 더 짙게 남아 있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는 오르는 장에 기름을 붓고, 빠지는 장에서 기계적 매도를 만든다. 오르면 더 사고 빠지면 줄여야 하는 구조가 진폭을 키운다. 여기에 외국인 리밸런싱이 겹치면 작은 뉴스도 큰 매물이 된다. 노무라도 이번 외국인 매도를 한국 경제의 이상 신호로 보지 않았다. 지수 편입 비중이 급등한 뒤 따라오는 기계적 조정이라는 것이다. 펀더멘털은 그대로다. 한쪽으로 너무 몰린 포지션이 흔들렸을 뿐이다.
- 레버리지 투자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레버리지 상품의 진짜 위험은 방향을 맞혀도 시간을 못 견딘다는 데 있다. 하루 10% 오르고 다음 날 10% 내리면 원래 주식은 거의 제자리로 오지만, 2배 레버리지는 오르내림이 반복될수록 복리로 손실이 쌓여 횡보장에서도 계좌가 녹는다. 6개월짜리 산업 전망을 믿고 하루 단위 상품을 오래 들고 가면, 좋은 아이디어가 나쁜 구조에 갇힌다. 오징어 게임은 산업에서 먼저 벌어지지 않는다. 계좌 구조 안에서 먼저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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