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로젠퀴스트 개인전
서울 한남동 타데우스 로팍
회화·드로잉·콜라주 펼쳐
한 여성의 한쪽 얼굴을 그린 그림이 단단한 프레임 안에 갇혀 있다. 사방에서 뻗어나온 끈들은 여성의 얼굴을 옭아맨 채 잡아당긴다. 그 힘이 어찌나 강한지, 피부 같은 캔버스 천이 팽팽하게 펴지다 못해 가장자리가 조금씩 늘어나고 살짝 찢기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화면 속 여성의 눈빛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듯 무언가를 또렷하게 응시하고 있다. 수수께끼 같은 이 작품은 미국 팝 아트의 선구자 제임스 로젠퀴스트의 ‘침대스프링’(1962).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사회적 시선에도 당당히 자기 길을 가는,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을 은유한 것이다.
로젠퀴스트의 개인전 ‘꿈의 세계: 회화, 드로잉 그리고 콜라주, 1961–1968’가 서울 용산구 한남동 타데우스 로팍에서 내년 1월 25일까지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로젠퀴스트가 작가로서의 입지를 확립하고 당대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부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1960년대 10년의 시기를 조명한다. 회화와 스케치, 콜라주 등 10여 점을 한 자리에 펼친다.
1960년대 로젠퀴스트는 회화 평면의 본질에 집중하며 광범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작가는 옥외 광고판 화가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잡지에서 찾은 대중적 이미지를 결합한 콜라주 기법을 사용하기도 했고, 다양한 도상을 파격적인 비율로 병치하거나 일상 사물을 작업에 활용해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적 어휘를 구축했다. 독일의 전자회사 제너럴일렉트로닉스(GE)의 로고가 등장하는 ‘착란원 GE를 위한 연구’(1966)와 단편적인 이미지의 결합으로 완성된 ‘그림자’(1961) 등이 대표적이다.
가로 5.4m, 세로 2.4m의 초대형 네폭화 ‘플레이메이트’(1966)는 15년 만에 대중에 공개됐다. 플레이메이트는 미국의 성인잡지 ‘플레이보이’의 표지를 장식하던 모델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 작품은 1967년 플레이보이가 진행한 커미션 프로젝트 ‘순수미술로서의 플레이메이트(Playmate as Fine Art)’의 일환으로 제작됐다. 화면 중앙엔 여성의 상반신이 있고 양옆의 피클과 딸기, 크림 등은 먹음직스러운 모습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플레이메이트와는 다르다. 작가가 화면의 등장한 여성은 임신부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여성의 몸을 향한 욕망 가득한 시선을 의도적으로 비튼 것이다.
반듯하게 정렬되지 않은 4개의 캔버스 역시 상업 소비문화에서 유통됐던, 지나치게 이상화된 여성의 이미지를 와해시킴과 동시에 캔버스 고정 틀의 구조를 외부로 노출시켜 전통적인 액자의 개념을 깬다. 최근 한국을 찾은 작가의 아내인 미미 톰슨 로젠퀴스트는 “남편은 언제나 여성의 권리와 선택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작업을 했다. 플레이메이트 프로젝트 요청을 받았을 때도 조금 다른 작업을 하고 싶어 했다”며 “당시 ‘플레이메이트’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작품으로 평가됐다”고 전했다.
로젠퀴스트는 초기 팝 아트 운동의 최전선에서 인간의 지각, 이미지, 회화의 가능성을 급진적으로 실험한 작가다. 1962년 미국 뉴욕 리처드 벨라미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했고, 이듬해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기획전 ‘Six Painters and the Object’에 참여해 앤디 워홀과 로이 리히텐슈타인, 짐 다인, 재스퍼 존스,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함께 그룹전을 선보였다. 작가의 역작으로 평가받는 설치 작품 ‘F-111’(1964-1965)는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소장, 영구 설치돼 있다. 2003~2005년 구겐하임 미술관이 기획한 회고전으로 미국과 유럽을 순회했으며 지난 2017년 타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