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슬러 소위의 희생[임용한의 전쟁사]〈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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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북한군에 패해 천안 지역을 잃었던 미 24사단은 1950년 7월 9일 전의-조치원 라인에 21연대를 배치하고 차령산맥을 이용해 지연작전을 펼쳤다. 미군은 주 방어선을 금강으로 설정하고 있었지만, 사단 잔여 병력이 일본에서 다 도착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이날 전투에서 미군은 볼만한 승리를 거뒀다. 155mm 포가 도착해 북한군 전차 5대를 파괴했다. 105mm 포로는 거두기 힘든 결과라 통쾌한 승리였다. 미 공군은 도로 위에 정차 중인 북한군 트럭 행렬을 발견한 뒤 절반을 파괴시켰다.

이로 인해 북한군의 공격은 하루 늦춰졌다. 10일 북한군이 다시 전차를 앞세우고 돌파를 감행했다. 1대대 A중대 레이 빅슬러 소위의 1소대가 북한군 주력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빅슬러는 유능하고 책임감 강한 소대장이었다. 그는 근접한 북한군과 수류탄, 소총 사격을 주고받는 전투를 벌였다. 결국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시켰다. 빅슬러 소대는 3시간 동안 대단히 잘 싸웠지만, 측면의 다른 소대가 무너지는 바람에 북한군에게 포위됐다. 빅슬러는 연대장에게 철수를 요청했다. 연대장은 믿을 수 있는 소대장이 빅슬러밖에 없었으므로 진지를 고수하라고 명령했다.

이 명령이 빅슬러에겐 죽음의 명령이 됐다. 나중에 연대장은 3대대를 투입해 빅슬러를 구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소대 전원이 흔적도 없이 소멸되고 말았다. 이후 11일까지 벌인 전투에서 연대는 큰 손실을 입었다. 장비를 거의 다 분실했다.

그러나 더 큰 피해는 따로 있었다. 패전하는 부대에 가장 큰 손실은 빅슬러처럼 책임감과 능력 있는 장병이 먼저 전사하고, 비겁한 자들이 살아남는 것이다. 병력의 3분의 2가 남아 있어도 이런 장병이 없다면 그 부대는 더 이상 전투를 할 수 없다. 이런 인재의 가치를 모르고 보호하지 않는 나라, 조직은 존속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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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한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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