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나경 기자] “그룹위기관리위원회뿐 아니라 부서장급이 참석하는 위기관리협의회를 말 그대로 ‘상시’로 개최하고 있다. 비상계엄 이후 일주일 동안 비상대기 모드였다. 부서 간 논의 이후에는 리스크 총괄 관리그룹이 전체적으로 점검하는 식의 비상대응 패턴이 일상화하고 있다.”(시중은행 한 부행장)
은행·금융지주에서는 지난 연말부터 시작한 탄핵정국과 최근 미국 관세정책 불확실성에 비상대응체계를 가동하며 주말과 연휴 관계없이 상시 회의·근무를 이어가고 있다. 새로운 최고경영자(CEO)가 부임한 금융사는 연초 주말마다 회의하면서 리스크 대응 체계에 나서고 있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은행·금융지주사는 지난해 12월부터 이달 초까지 최소 3차례 비상대응체계를 가동했다. 시중은행 임원은 “예년과 다르게 불확실성이 커지다 보니 리스크 관리는 선수라는 금융그룹도 긴장하는 모양새다”며 “필요하면 주말 회의도 하고 수시로 시장 상황을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외환·파생상품 관련 부서에서는 환율이 요동치자 점심시간도 쪼개며 시장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환율에 민감한 부서, 특히 외환·자금·파생·채권 담당 부서에서는 도시락이나 샌드위치로 배달을 받아 끼니를 때우는 게 일상화가 됐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올해 들어서는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비상체계 가동 빈도가 더 늘었다. 당장 지난 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선고를 앞두고 금융그룹 차원의 비상체계로 전환했다. KB금융 관계자는 “시장 변동에 대비하기 위해 지주 임원과 모든 계열사 전략담당 임원 등이 비상대응체계를 가동했다”며 “주말에도 비상 대응반을 운영하고 진행 중인 사업·전략에 미치는 영향도를 파악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국가별 상호관세까지 발표하며 주말 회의도 불사했다. NH농협은행은 지난 6일 서울 서대문구 본사에서 수석부행장 주재로 유관 그룹 부행장·부서장이 참석해 금융시장 불확실성 증대 시 손익영향을 분석하고 관세 부과에 따른 산업별 영향 등을 점검했다. 지난 4일 신한·하나금융, 7일 우리금융이 잇따라 임원진 회의를 통해 관세 피해기업 지원방안을 마련했다.
신임 은행장의 ‘열정’도 주말 없는 비상근무에 한몫했다. KB국민은행은 이환주 행장 취임 후 본부장 이상 임직원이 주말마다 사업전략 회의를 했다. 별도의 회의자료 없이 각 본부에서 핵심 사업추진 방향을 발표하고 백가쟁명식 토론을 하는 자리다. 하나은행도 이호성 행장 부임 후 연초 주말에 워크숍, 현안 회의 등을 열었다. SC제일은행은 이광희 신임 행장이 주재하는 임원진 회의를 수차례 개최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탄핵정국 이후 유난히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커졌다”며 “통상 행장 임기가 2년이기 때문에 신임 행장들이 임기 초반 업무 이해도·조직 장악도를 높이기 위해 주말 회의를 연 것 같다. 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이런 기조가 이어질 것이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