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언(1973∼ )
누구에게나 ‘너무한 날’이 있다. 이 시는 ‘너무한’ 이야기를 빗줄기에 기대어 하고 있다. 화자에겐 50년 된 친구가 있다. “물이 다 빠져나간 표정”으로 죽어가는 중이다. 화자는 견디기 힘든 슬픔 앞에서 슬프다는 말 대신 한사코 “비가 왔다”고 말한다. 슬프다는 말 대신 “물빛에 얼굴이 넘치고 있다”고 말한다. 슬프다는 말 대신 “어제는 흘러넘쳤다”고 말한다. 시는 누구도 한 적 없는 방식으로, 다르게 말하기다. 무턱대고 다르게(특이하게) 말한다고 다 시가 되진 않는다. 죽음을 향해 가는 이의 얼굴에서 “물이 다 빠져나간 표정”을 읽어내고, 슬픔을 통제하는 동시에 새로 빚어낼 수 있어야 한다. 시인은 세상을 관찰하고 진찰한 후 자기 언어로 번역하는 사람이다. 쏟아지는 슬픔으로 얼굴이 물빛으로 넘칠 때, 그 찰나를 종이에 붙잡아 두는 사람이다. 오랜 친구와의 이별을 얼굴로 받아내는 사람을 상상하니, 빗속에서 우는 일처럼 하염없고 슬프다.박연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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