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관사 수륙재는 조선 태조때 시작
대한불교조계종 진관사 주지 법해 스님은 17일 “최근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최응천 국가유산청장, 이배용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수륙재 유네스코 무형유산 등재추진위 공동위원장), 진관사 회주 계호 스님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1회 수륙재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위한 학술 세미나’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27일 서울 은평구 진관사에서 열린 해당 세미나에선 한국 불교의 수륙재와 진관사 ‘국행(國行) 수륙재’의 역사적·문화적 가치와 의례공동체로서의 역할과 의미 등이 조명됐다.
수륙재는 온 세상의 모든 고혼(孤魂·의지할 곳이 없는 넋)을 차별 없이 구제하기 위해 지내는 불교 의례다. 진관사 수륙재는 1397년 조선 태조 때부터 시작됐으며, 이후 국가 차원으로 설행(設行)돼 국행 수륙재로 불린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을 거치면서 잠시 중단됐으나 1970년대 복원을 거쳐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진관사 국행 수륙재는 조선시대의 전통적 수륙재인 칠칠재(七七齋) 사십구재 형식으로, 낮에 지내는 낮재와 밤에 지내는 밤재의 이부 구성을 유일하게 전승하고 있다. 매년 9∼10월 입재(入齋)를 시작으로 초재(初齋)에서 칠재(七齋)까지 49일에 걸쳐 진행되며, 수륙재의 정점인 마지막 칠재는 이틀 동안 봉행된다.현재 국가무형유산에 등재된 수륙재는 진관사 국행 수륙재, 강원 동해 삼화사 수륙재, 경남 창원 아랫녘 수륙재 등 3개다. 이 밖에도 각 지방자치단체의 지방무형문화재로 등재된 것들도 다수 있다.
법해 스님은 “수륙재는 종교를 넘어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담긴 우리 민족의 장엄한 무형문화유산”이라며 “세계적으로 개인적, 사회적, 국가적 대립과 갈등이 극심한 지금 시대에 용서와 화해, 구원과 평화의 정신을 담은 수륙재는 충분히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될 가치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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