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사회, 다양성과 존중을 가르칠 때다[기고/임정묵]

20 hours ago 6

임정묵 서울대 교수회 회장·농생명공학부 교수

임정묵 서울대 교수회 회장·농생명공학부 교수
우리는 갈등의 활화산 위에 서 있다. 사회 각계와 개인 사이에 쌓인 갈등이 끊임없이 분출된다.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 개인과 집단의 배타적 이익 추구가 갈등의 주요 원인이다. 작은 손해에도 분노가 즉각 표출된다.

유엔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갈등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상위권(3∼5위)이고, 행복 수준은 세계 중위권(67위)에 머문다. 보건복지부 조사에서 전 국민의 73.6%가 최근 1년간 우울감이나 중증 스트레스 등으로 정신건강을 해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처럼 갈등에서 비롯된 분노는 국민 불행의 근원이며, 양극화와 맞물려 사회를 산산이 분해하고 있다. 1970, 80년대만 해도 정과 의리로 끈끈히 뭉쳤던 사회였고, 되레 이를 악용한 사례가 빈번했다. 민주화 이후 개인의 가치와 절차적 투명성이 강화됐으나, 그 이면에서 누적된 갈등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갈등의 양상 또한 더욱 세분화됐다. 직업 귀천, 젠더 문제, 교육 서열화 같은 구조적 갈등에서부터 각자의 이익만을 좇는 일상적 갈등까지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다.

이럴 때일수록 나와 다른 타인을 인정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다양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 간의 소통과 상생을 위해 일부 기관에서 다양성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으나 그 역할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다양성 인식 제고에 머무를 뿐, 인력과 재원 부족으로 실질적 변화까지 이끌어 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오랜 쟁점인 젠더 문제조차 높은 사회적 통념에 가로막혀 해법을 찾기 쉽지 않다.

이제는 위원회 차원을 넘어 존중을 개인의 인격과 사회의 핵심 가치로 자리 잡게 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교육이다. 아이들이 타인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해야 한다. 학생들이 자기 자신에 대한 건강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익숙한 관습과 편견을 넘어서는 용기, 그리고 타인의 장점을 자신의 성장으로 승화시키는 지혜를 학교에서 기를 수 있게 해야 한다. 생각과 행동의 차이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토론과 논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 역시 필수적이다.

다양성은 개인의 덕목을 넘어 학문과 사회 발전의 토대다. 그러나 입시 중심 교육에 매몰된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존중과 소통의 가치를 충분히 가르치기 어렵다. 인성과 예체능 교육, 기초학문을 균형 있게 강화해 시민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길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위태롭다. 갈등이 일상화되고 성장동력이 약화된 사회에서 누가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겠는가?

초중등교육의 다양성을 확대하고 이를 고등교육과 유기적으로 연결해야 한다. 그래야 학문 간 균형 있는 발전이 가능하다. 학생 맞춤형 교육, 소수자와 외국인에 대한 존중, 내실 있는 국제화 역시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나아가 대학 간 협력과 상생 발전의 기반도 마련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구해야 할 대상은 분명하다. 학교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청소년, 낯선 문화 속에서 방황하는 외국인, 남을 배려하거나 어울릴 줄 모르는 청년, 그리고 어린 시절 성적의 상처로 평생 열등감을 안고 사는 이들이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교육기관과 언론, 그리고 정부가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노력을 함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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