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서 목회 활동 하고 싶다… 부디 생전에 길 열렸으면”

3 hours ago 2

한국인 처음으로 교황대사 활동
2월 은퇴 장인남 바오로 대주교
방글라-네덜란드 등서 외교 업무
이젠 일반 신자들과 만나고 싶어… 전해들은 교황님도 ‘강복’ 해주셔

1월 퇴임을 앞두고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하고 있는 장인남 대주교(오른쪽). 그는 “교황청은 세계 대부분의 국가 및 국제기구에 교황대사를 파견하고 있고, 세계 평화와 인권 문제를 물밑에서 중재하는 작은 거인”이라며 “더 많은 사제가 교황청 외교관으로 활동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장인남 대주교 제공

1월 퇴임을 앞두고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하고 있는 장인남 대주교(오른쪽). 그는 “교황청은 세계 대부분의 국가 및 국제기구에 교황대사를 파견하고 있고, 세계 평화와 인권 문제를 물밑에서 중재하는 작은 거인”이라며 “더 많은 사제가 교황청 외교관으로 활동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장인남 대주교 제공
“혹시나 살아 있는 동안 길이 열린다면, 북한에서 사목 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1일 인천 강화도 꽃동네에 있는 ‘교황 프란치스코 센터’에서 만난 장인남 바오로 대주교(76)는 “2018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북한 방문이 성사됐다면 남북 관계가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 출신 첫 교황대사였던 그는 방글라데시, 우간다, 태국 교황대사 등을 거쳐 네덜란드 교황대사를 마지막으로 올 2월 은퇴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1976년 사제품을 받은 장 대주교는 교황청 외교관학교를 마치고 1985년 주엘살바도르 서기관을 시작으로 교황청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서기관, 참사관을 거쳐 2002년 한국 가톨릭 사상 처음으로 교황대사(주방글라데시 교황청)에 임명됐다. 한국인 출신 교황청 외교관은 장 대주교 이후로도 2018년 정다운 신부와 2019년 황인제 신부까지 3명뿐이다. 우리보다 가톨릭 역사가 훨씬 긴 일본은 아직 교황청 외교관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교황대사는 교황을 대신해 주재국 정부와 교황청의 가교 역할을 하는 고위급 외교 성직자다. 교황청과 주재국 간의 외교 활동과 함께 주재국의 인권, 평화, 민주주의 수호 등과 관련된 사안을 교황청에 보고하고 메시지를 내는 활동을 한다.

장 대주교는 “올 1월 퇴임 인사차 바티칸에 들렀는데, 교황청 어른들이 한국 걱정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민주주의의 모범국이라고 여겼던 한국에서 갑자기 비상계엄이란 사태가 벌어지자 굉장히 놀랐다는 것. 그는 “국무원장인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 외교장관인 폴 갈라거 추기경 등이 ‘어떻게 한국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며 매우 안타까워했다”고 했다.

주캄보디아 교황대사 시절의 장인남 대주교 모습. 장인남 대주교 제공

주캄보디아 교황대사 시절의 장인남 대주교 모습. 장인남 대주교 제공
최근 바티칸에서 거행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미사에 참석한 그는 교황의 2017년 미얀마 방문, 2019년 태국 방문을 주재국 교황대사로 준비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교황님은 참으로 열정적이면서도 매우 소탈했던 분”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당시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등 4개국 교황대사를 겸임했다. 장 대주교는 “의전과 관련해 교황님이 요청한 것은 ‘침실 옆에 기도 드릴 수 있는 작은 공간을 하나 준비해 달라’는 것뿐이었다”며 “교황님은 하루 일정이 끝나면 저녁에 혼자 조용히 기도하는 것을 좋아하셨다”고 떠올렸다.“교황님은 태국 국왕의 만찬도 정중히 사양하셨어요. 방문국의 큰 행사보다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우선으로 하셨지요. 시골 성당을 방문하고, 병원에서 환자들을 일일이 만나다 보니 일정이 그야말로 강행군이었어요. 그 피곤한 상태에서도 신자들을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늘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나누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장 대주교는 “올 1월 은퇴를 앞두고 교황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면서 ‘한국에 돌아가면 가능하면 남북 관계 개선과 탈북민을 돕는 데 노력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강복(降福)해 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는 평안북도 강계, 어머니는 의주 출신이다. 형인 장인산 베르나르도 신부도 강계에서 태어났다.

“교황청 외교관은 외교와 행정을 하는 자리라 사실 일반 신자들과 접촉하며 사목 활동을 할 기회가 별로 없어요. 그래서 엘살바도르에 있을 땐 자청해서 외교관 업무가 없는 주말에는 변두리에 있는 가난한 신자촌에서 사목 활동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지요.”

그는 “이제 은퇴도 했으니 그동안 제대로 못 했던 사목 활동을 진짜 열심히 하고 싶다”며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북한 교회와 북한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기꺼이 동참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강화=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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