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명상 방법을 처방하고, 로봇이 승복을 입고 법명을 받았다. 부처상 앞에서는 EDM이 흘렀고 절이 운영하는 소개팅에는 1600명 넘게 몰렸다. 대한불교조계종(조계종)이 바꾸고 있는 불교의 풍경이다. 이처럼 조계종이 이색 콘텐츠를 잇달아 쏟아내면서 불교가 MZ(밀레니얼+Z) 세대의 새로운 문화 접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 풍경은 6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서도 연출됐다. 키 130㎝의 휴머노이드 로봇 GI가 이날 수계식에서 법명 '가비'를 받고 일반 불자로 계를 받았다. 수계식은 부처·가르침·스님에게 귀의하고 계율을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불교 의식이다.
가비는 삭발을 연상시키는 헬멧과 장삼·가사를 착용하고 합장한 채 계사 스님들 앞에 섰다. 조계종에 따르면 가비는 부처님오신날 전후로 '명예 스님' 역할도 맡을 예정이다. 수계식에서는 참회와 연비 의식도 진행됐다. 일반적인 향불 대신 로봇팔에 연등회 스티커를 붙이고 108염주 목걸이를 거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스님이 "거룩한 부처님에 귀의하겠습니까"라고 묻자 가비는 "예, 귀의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조계종은 △생명 존중 △다른 로봇·사물 훼손 금지 △사람에게 대들지 않기 △기만 행동 금지 △과충전 금지 등을 담은 '로봇 오계'도 제시했다. 가비는 "예, 않겠습니다"라고 답했고 행사장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해당 소식은 온라인 커뮤니티 등으로 확산됐다. 누리꾼들은 "시대의 흐름에 제대로 편승한다", "풀충전 스님 나오겠다", "108배나 3000배도 대리로 가능한건가" 등 반응이 나왔다.
조계종 총무원 관계자는 "국제불교박람회나 이런 다양한 행사들은 사실 한 10여 년 전부터 계속 진행하고 있었다"며 "한 2~3년 전부터는 타깃층을 젊은 분들 위주로 잡아 진행하고 있고 MZ세대분들께서도 관련 내용에 많이 호응해 주고 계신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대적인 언어로 불교를 전달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는 9~10일에는 절집 소개팅 프로그램 '나는 절로, 동화사'도 열린다.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이 대구 동화사에서 1박2일 일정으로 진행하는 행사로, 참가자는 남녀 각각 12명이다. 다만 높은 인기에 신청 단계에서 남자 855명·여자 747명 등 총 1602명이 몰린 것으로 전해졌다.
지달 초에도 비슷한 열기가 이어졌다. 지난달 2~5일 나흘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불교박람회에는 약 25만명이 찾아 역대 최다 방문객 수를 기록했다. 2023년 7만명에서 3년 만에 3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관람객의 73%는 MZ세대였고 무종교 참여 비중은 48%에 달했다.
개막 첫날부터 오픈런이 이어졌고 '서핑하는 부처님' 티셔츠·분홍 하트 눈 부처 키링·목탁 키링 등 불교 굿즈 브랜드 부스에는 박람회 내내 긴 줄이 늘어섰다. 박람회 기간 서울 봉은사 앞에서는 부처상을 배경으로 DJ 소다·우원재가 출연한 야외 EDM 파티 '반야심경 공파티'도 열려 절 앞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2024년 부처님오신날 행사에서 '뉴진스님'으로 활동하는 개그맨 윤성호가 디제이로 나서 '부처핸섬' 등 불교적인 요소와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을 결합한 무대를 선보이는 등 그야말로 '힙한 종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불교의 인기는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다른 종교 신앙심은 매년 줄고 있는데 반해 불교만 늘었다. 특히 비종교인 중심으로 불교에 대한 긍정 평가가 두드러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엠브레인 측은 "종교가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고 젊은 세대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결과"라고 분석했다.
지난달 3~5일에는 봉은사 일대에서 'AI 시대의 선명상'을 주제로 '2026 국제선명상대회 & 선명상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이 대회에서는 AI 분석으로 참가자의 마음 상태를 진단하고 개인 맞춤 선명상 방법을 제안하는 '마음처방전' 프로그램이 운영됐다. 조계종에 따르면 행사 기간 시민과 관광객 약 5만명이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교 콘텐츠가 이같이 인기몰이를 하는 배경으로 전문가는 기존 콘텐츠와의 차별성을 지목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서구 콘텐츠에 익숙한 MZ세대에게 불교는 새로운 콘텐츠인 데다, 빠른 변화 속 인터넷 세대에게 정반대의 정적인 특성이 매력으로 작용한다"며 "장면마다의 독특하고 심오한 느낌도 MZ 소비자가 열광하는 배경"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젊은 층에게 인기를 끄는 것처럼 기존과 다른 독특함이 있을 때 소비자가 반응한다"며 "불교계가 MZ세대 취향에 맞게 콘텐츠를 다양하게 개발하고 있는 것도 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이정우/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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