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는 묵은지횟쌈과 고사리·루콜라샐러드, 오징어실채볶음과 오가피무침 등을 배웠다. 간단하고 맛도 좋은 메뉴들이었다. 그중 베스트를 꼽으라면 묵은지횟쌈이다. 조리법이랄 것도 딱히 없다. 광어회를 떠 와 맛있게 익은 묵은지를 곁들이고, 입맛에 따라 찍어 먹을 수 있게 된장과 간장만 곁들이면 끝이다. 한입에 쏙 들어가도록 손으로 쥐어 만든 밥에 묵은지와 광어회를 올리고 된장이나 간장을 곁들여 오물오물 씹다 보면 천국이 따로 없다.
음식을 배우는 시간이지만 공부하듯 치열하게 하지는 않는다. 음식이 돼 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이맘때 어떤 식재료가 있는지 익히고, 맛있게 먹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다고 느낀다. 아내는 배워 왔으면 집에서 좀 만들어 보라고 채근하지만, 완벽한 행복을 맛보고 온 터라 딱히 무언가를 더하고 싶지 않다.
게으른 학생은 나뿐인 것 같고 다들 실습도 열심히 한다. 1등은 자동차 회사에 다니는 A 매니저님. 메모도 꼼꼼히 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마트에 들러 수업시간에 배운 식재료를 다 사 간다. 김치까지 담글 정도니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대학 재단에 있는 우리 반 맏형님도 열심히 한다. 언젠가는 수삼튀김을 해 봤다며 완성된 사진을 카톡방에 올려 박수를 받았다. 그렇게 대화를 하다 보면 이 얘기 저 얘기 끝에 자연스럽게 들려오는 배우자의 사랑과 환호, 가정의 평화와 행복에 일조한 것 같아 내심 뿌듯하다.내가 음식 수업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와 목적은 자립이었다. 신혼 때 빠듯하게 살림을 꾸렸던 아내는 “마음 편히 시장을 본 적이 없다. 비싸고 좋은 식재료는 턱턱 살 수 없으니 이것저것 들었다 놨다…. 그때 음식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나는 내 밥을 안 챙기는 아내가 그렇게 서운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밥은?” 하고 묻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아내는 정말 훌륭한 사람이지만 내 밥을 정성 들여 챙기지는 않는다. 이런 일로 몇 번 부부싸움을 한 적도 있다. 그 끝에 남은 것은 묘한 부끄러움이었다. 나도 성인이면서 밥, 밥 하는 게 창피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안 되겠다 싶어 음식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젠 김밥도 말고 된장찌개도 끓이고 파김치와 깍두기도 담그는 남자가 됐다. 만세.
지난달에는 예바라기 선생님을 모시고 스승의 날 기념 식사도 했다. 우리의 자립을 도와준 고마운 선생님. 자립이라고 썼지만 내가 홀로 설 수 있어야 가족 간의 동행도 가능하지 싶다. 남자들의 공간이라고 하면 으레 서재나 오디오룸 등을 떠올리는데, 주방이나 쿠킹클래스도 자연스럽게 입에 오르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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